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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5회 아볼로 캠프 전문분야별 연구결과]

* IVF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는 <지성운동> 꼭지를 통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자료를 연재 형식으로 공유합니다. 원글에 포함된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한국기독교의 어두운 역사를 파헤치다(1)

강성호(성균관대 사학 석사)


1. 나의 문제의식: 폭로의 역사학

  한국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부산일보의 김기진 기자가 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을 읽으면서였다. 사학과에서조차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상황에서 알게 된 한국전쟁 초기의 민간인 학살(Genocide) 문제는 큰 충격을 주었다. 때마침 그때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폭력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었고, 내가 살던 울산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유족들이 활발한 활동을 할 때였다. 자연스럽게 한국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순사건, 제주4·3사건,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한 자료들을 섭력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제노사이드학회에도 가입을 했다. 반공과 냉전의 관점으로 설명된 한국현대사를 인권과 평화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싶었다. 일종의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다루고 싶었다. 

대학원 진학 후 반공과 냉전의 관점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답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폭로(Disclosure)였다. 전쟁 전후의 시기 국군, 경찰, 우익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은 무고한 민간인이었던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은 오히려 ‘빨갱이’로 호명되어 수 십 년 동안 ‘폭도’로 기억되었다. 최규석 작가의 『100℃』에서 주인공의 할머니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살해당한 뒤 빨갱이의 딸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사연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는 조작 간첩 사건 등 국가폭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경우 대부분 나타났다. 역사의 민낯을 전면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변화가 생겼다. 한 번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한국기독교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되었을까. 교회 안에 질문이 거세된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사람들은 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등등. 힘겨웠던 학창시절을 견디게 해준 교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비판적 거리가 생기는 만큼 한국기독교를 연구대상으로 삼기 쉬워졌다. 여기에서도 폭로의 역사학은 필요했다. 초기 미국인 선교사들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교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호교론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딴지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료를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힌 뒤에 얘기해도 크게 늦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석사학위논문의 주제를 ‘1960년 제2차 마산항쟁’에서 ‘1950년대 정교유착’으로 바꾸었다. 여기에는 H신학교의 도서관에서 발굴한 <한국기독시보>가 한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