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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10월 중순에 월드컵이 열렸던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세계의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모인다는 제 3차 로잔대회에 참여했답니다. 생각해보면 영광일 따름입니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로 큐티하는 분들은 지난 7월호, 8월호 뒷부분에 실린 로잔언약 이야기를 보셨을 지도 모르겠군요. 1974년 로잔언약과 1989년 마닐라 선언의 의의에 대해서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이 로잔언약은 성경이 말하는 정신을 오늘날 세계적 상황에 맞춰 가장 충실하게 적용한 복음주의 문서랍니다. 무엇보다 IVF 식구들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개한 것이죠.
게다가 로잔언약은 1980년대 중반 군인들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던 시절 사회참여를 고민하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기독청년들에게 시기적절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해주었어요. 91년에 창간한 복음주의 월간지 [복음과 상황]도 오랫동안 로잔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표지에 실어왔을만큼요.

 

 

로잔 언약, 그 첫 시작

 

그럼 로잔언약이 뭐 길래 이토록 중요한 문서로 평가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독교 선교의 중요성을 고수한 부분 때문이랍니다. 로잔언약은 여전히 남아있는 미전도 종족을 부각시킨 바 있었어요. 둘째로는 복음의 내용과 복음의 전달자의 태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통전적인 복음주의 정신을 보여주었죠.
 

 

잠시 로잔언약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볼게요. 20세기 전반, 기독교는 자유주의 진영과 근본주의 진영으로 나뉜 채 선교의 열정은 식어가고,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속수무책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복음주의 진영의 역할이 절실해진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그사이 미국의 빌리 그래함은 독보적인 복음전도 집회를 이끌면서 복음주의 전도운동의 열기를 되살리고 있었어요. 영국에서 시작된 IVF 운동은 IFES라는 국제적 연대조직을 만들고, 활발한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존 스토트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답니다. 또 복음적 정체성을 갖고 사회문제에 발언을 하기 시작한 로널드 사이더로 대표되는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그룹도 생겨납니다.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뉜 기독교계 안에 복음을 중심으로 새판을 짤 수 있는 중재적 그룹의 역할이 발휘될 때가 바로 1974년 로잔대회였던 것이죠.

 

이번 제 3차 로잔대회에서 남미의 복음주의 지도자 르네 빠디야와 사무엘 에스코바는 74년 대회를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74년 초에 존 스토트를 남미로 초청하여 현지 상황을 경험하게 했다는 겁니다. 존 스토트는 50년대부터 영국 복음주의 기독교계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었지요. 바로 그가 제3세계 복음주의 기독교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겁니다. 서구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여간해서 사회참여 문제에 앞장서지 않습니다만, 이분이 서구와 제3세계 복음주의 진영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데 큰 기여를 하셨던 거죠. 진보와 보수 기독교 양 진영을 엮어준 유명한 로잔언약 구절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전도 evangelism와 사회적 관심 Social Concern 이 서로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기거나 게을리 했던 것을 회개한다. 인간 간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닐지라도, 사회적 행동이 복음전도는 아닐지라도, 또한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닐지라도, 복음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두 가지 의무임을 천명한다.’(로잔언약 5항 그리스도인의사회적 책임 중에서)
 

 

그렇습니다. 사회상황이 아무리 극심한 차별과 부정의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것을 개선하는 일 자체를 복음을 전하는 것과 차마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복음주의자들의 고집이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그동안 그것을 애써 모른 척했던 과거를 회개하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사회적 행동은 구원을 위한 행동이 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천명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합의를 이끌어낸 선배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서로 질시하고 외면하던 보수, 진보 두 진영을 묶어내는 화해 사역의 한 모델을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이 부분이 80년대 한국사회 상황과 복음주의 청년학생들을 엮어주는 다리 역할도 해낸 것입니다.

 

마닐라, 바닐라같은 대회

 

제 2차 대회로 불리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 대회에 이르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마닐라 대회가 열리기까지 15년 사이에 6개의 항목별 대회들이 열리면서 로잔언약의 정신은 더욱 구체화되지요. 특히 1982년 미국 그랜즈 래피즈에서 열렸던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관련 협의회에서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바지의 두 가랑이며, 새의 두 날개’라고 비유했습니다.
 

 

1989년 마닐라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역시 로잔언약 정신을 계승하면서 마닐라 메니페스토Manifesto를 발표합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거의 모든 교단과 선교단체들이 로잔운동에 합류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복음주의 진영이 카리스마틱한 성령운동 그룹을 초대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전도는 말과 행위 뿐 아니라 사탄의 지배를 격파하는 하나님의 능력(표적과 기사)을 동반해야한다는 문구가 첨가되는 것으로 암시된답니다.

 

대표적으로 기억하면 좋을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Whole World에, 온전한 복음 Whole Gospel을 전하라고 온 교회 Whole Church를 부르고 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신실하고 긴급하게, 그리고 희생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것을 결의한다.'(서두의 21개 항의 고백 중 21번째)

 

‘온전한 복음’ 항목에서는 ‘복음전도’가 우선된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복된 소식과 선한 행위는 분리할 수 없다고 첨언합니다. 로잔언약이 계승되고 확장되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개념규정이 더 정교해진 것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대회를 끝으로 토마스 왕의 주도로 복음전도 중심 그룹은 ‘A.D. 2,000’이라는 복음전도적 운동체로 독립하여 전도에 매진하게 됩니다. 사실상 로잔 운동은 여기서 시효를 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케이프타운을 적시는 많은 물소리

 

자, 그럼 이제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 3차 로잔대회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닐라 대회에 이어 한동안 잠잠하던 대회조직이 2004년부터 되살아나면서 제 3차 대회가 케이프타운에서 열렸습니다. 이제는 빌리 그래함이나 존 스토트같은 영웅적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추억되었습니다.
 

 

제가 이 역사적 대회를 여러분을 대신하여 다녀왔으니,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회 일정은 케이프타운의 초대형 국제회의센터에서 10/18(주일)부터 25(주일)까지 8일간 계속되었습니다. 대회의 대체적인 순서를 말하자면, 오전은 에베소서 조별 성경공부와 강해와 주제 강의를 중심으로 채워졌고, 오후에는 선택식 특강과 크고 작은 대화모임으로 진행되었으며 저녁에는 대륙별 선교 상황이 소개되었습니다. 700개 테이블마다 각 대륙을 대표하는 대 여섯 명의 조원들이 잘 안배된 채로 대회가 진행되었지요. 그들이 내는 대화, 찬양, 기도는 거대한 웅성거림이었고, 그것은 말하자면 ‘많은 물소리’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시간은 오전 성경강해와 주제특강이었습니다. 이때 대회 정신이 집중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지요. 대회 전체 주제는 화해 Reconciliation였고, 매일 소주제는 각각 진리Truth, 화해 Reconciliation, 증거 World Faiths, 우선순위 Priority, 통전성 Integrity,필자 주-개인적 차원에서는 신실성으로 번역하기도 함, 파트너십 Partnership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특별히 제게는 ‘화해’를 주제로 한 화요일과 ‘통전성'을 주제로 한 토요일이 가장 큰 도전을 준 날이었습니다.

 

 

화요일의 ‘화해’와 토요일의 ‘통전성’

 

화요일에는 남미 복음주의 신학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서 루스 빠디야(코스타리카, 르네 빠디야의 딸)가 예수 자신이 평화이며, 그 분이 평화를 이루는 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브렌다 맥닐(미국, IVF 간사 출신)은 자기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남아공을 방문한 미국 정치인이 남아공 인종차별 문제를 언급하자 당신네 나라 인종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질책을 들었다는 예를 들었죠.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인종 간 대학살 사태를 경험한 안트완 주교(르완다, IVF 개척자)는, 당시 기독교인 비율이 90%가 넘었음에도 전통적 세계관이 교회 안에 팽배했을 뿐 아니라 복음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가 이뤄지지 않아 사회적 갈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뼈아프다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간에 반목을 풀지 못했고, 정치권력과 결탁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인종 학살이었다는 겁니다. 이 시간에는 꼭 우리나라 기독교계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답니다. 남북 간의 심각한 대치가 계속되는 요즘인지라, 그의 고백은 지금도 절절합니다. 
 

 

이날 저는 같은 조의 영국인 리더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너는 어떤 화해의 사역을 해보았니? 너희 나라의 경우는 어떠니?’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떤 화해의 직분을 감당하며, 우리나라 복음주의자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다른 한국 참가자는 한국의 햇볕정책이나 일부 기독교 그룹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운동을 말했다고 했지만, 저는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깨어진 가정에서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돕고 있다는 말만 입 안에서 맴돌았을 뿐입니다.

 

토요일에는 크리스토퍼 라이트(영국,「하나님의 선교」,「현대를 위한 구약윤리」의 저자, 제 3차 대회 선언문의 기안책임자)가 권력과 성공과 부유함의 우상에 사로잡힌 교회 지도자가 바로 하나님의 선교의 걸림돌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 Humble과 신실 Integrity과 소박함 Simplicity임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페미 아델레에(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IVF 총무)는 번영의 신학이 번영의 복음을 정당화시켜왔지만, 예수님의 복음은 부와 번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번영의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목요일, 케이프타운 화해의 역사

 

사실 대회 공식일정보다 더 생생한 배움이 있었던 건 목요일이었습니다, 이날 하루는 공식일정은 없었는데,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의 역사와 그 결과를 배우는 투어에 참여했습니다.  투투 주교와 함께 인종차별반대운동에 나섰던 남아공의 감리교 목사가 증언해 주었습니다. 인종을 차별하고 탄압했던 백인들이 고백을 시작한 것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서 가능했고, 이 위원회는 남아공의 백인 기독교인들의 참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케이프타운이지만 시내 곳곳에 차별과 저항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도시 변두리에는 흑인들만의 남루한 정착지역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남아공에서 치르는 대회, 그것도 화해를 표방하는 모임에서 변변히 남아공의 화해의 역사를 소개해주지 않아 케이프타운 역사 투어에 주도한 ‘화해 Reconciliation’ 세션 참가자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답니다. 이 화해사역을 감당하려는 그룹을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통합할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이고 적합한 표현이 화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이것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준비해가고 있었습니다.

 

대회 말미에 케이프타운 언약 Commitment의 전반부가 작성되어 배부되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www.laussane.org에 들어가면 바로 나옵니다만 제가 미리 소개해 보겠습니다. 

 

특별히 주목해서 읽어 본 것은, 8항에 나온 화해 Reconciliation의 사역입니다.

 

‘주님은 모든 경계물과 적개심을 가로질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들과 이웃들을 화해케 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피조계의 궁극적인 화해의 목적을 성취하셨고, 예수의 몸의 부활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의 첫 열매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세상과 화해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10항에서는 다시 한 번 선교의 통전성 The integrity을 언급합니다.

 

‘모든 선교의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죄와 고통과 부정의(Injustice)와 피조계의 무질서 Disorder가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랑하고 섬기도록 우리를 보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선교는 복음전도 Evangelism의 통전성 Integration과  헌신적 참여 Committed Engagement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두 영역은 하나님의 복음의 온전한 성경적 계시로 요청되고 인도되고 있습니다.  (중략)  통전적 선교는 단순히 복음전도와 사회적 참여가 병행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선포가 사회적 결과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략)  우리의 사회참여는 복음적 결과를 낳습니다.’        

 

멋진 표현들이죠. 그러나 로잔언약이 이 표현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회 기간 중에도 오스 기니스, 존 파이퍼, 팀 켈러, 닉키 검블 등 쟁쟁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과 남미, 아프리카 등의 지도자들 사이에 강조점이 분명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74년 로잔대회 때도 복음전도 중심의 빌리 그래함과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반사역으로 이해한 로널드 사이더 및 급진적 제자도 그룹 사이에서 존 스토트가 탁월한 리더십으로 그것을 중재해내었습니다. 이 중재 혹은 화해의 능력이 로잔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도 74년 로잔정신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대회의 주도적 분위기는 다분히 복음 전도적 선교로 가고 있었답니다. 말하자면 로널드 사이더나 제 3세계의 입장을 당시처럼 강력하게 대변할 그룹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이 세 번째 균형축을 아마도 앞서 소개한 ‘화해’ 그룹에서 맡아야하지 않을까, 또 우리나라 복음주의 그룹 이 바로 이 영역에서 헌신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들의 선교’를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이런 양쪽이 긴장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조율하며 복음주의 진영의 하나됨을 지켜가는 모습에서 큰 매력을 느낍니다. 어쩌면 이런 긴장과 화해 속에서 온전한 복음주의 운동의 동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 이제 언제쯤, 어디서 제 4차 로잔대회가 열릴까요? 어떤 내용을 가지고 합의에 이르고 세계복음화 운동에 나가게 될까요? 물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답할 차례입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

 

1. 전 IFES의 총무였던 린지 브라운 등 IFES의 지도자들이 로잔의 중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IFES 리셉션에 갔더니, 그동안 중앙 무대 위에 올라갔던 이들 중 상당수가 IVF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유의 겸손함, 온건함 때문인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반가운 동창 같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에게도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서로 확인해볼까요?

 

2. 그동안 다소 추상적인 느낌을 주었던 통전적 선교가 이제 화해의 사역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 이번 대회에서 얻은 수확이었습니다. 통전적 선교나 화해의 사역을 그동안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나눠봅시다.

 

3. 대회에서 소개된 이들의 삶과 사역은 동족학살, 인종차별, 범죄 등 자기 나라의 이슈와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와 너무나 비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슈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얘기를 나눠봅시다. 그 이슈와 씨름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주변의 사례가 있는지도 나눠봅시다. 

 

4. 로잔언약은 강제적인 법조문이 아니라 통전적인 복음주의 정신에 대한 자발적 합의문입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겠지만, 정말 기쁘게 그것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운동의 자발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우리 운동이 자발적인 운동이 되기를 꿈꾸지만, 그마저도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자발성은 언제,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 것인지 나눠봅시다.

 

 

함께 나눌 책들

 

로버트 웨버,「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 죠이선교회
로널드 사이더, 르네 빠띠야,「복음전도, 구원, 사회정의」, IVP
존 스토트,「복음주의의 기본진리」, IVP
조종남 편,「로잔, 세계복음화 운동의 역사와 정신」, IVP
류대영,「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푸른역사
도널드 데이튼,「다시 쓰는 복음주의 유산」, 요단
알리스터 맥그래스,「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한국장로교출판사

 

 

이강일 간사 (IVF 복음주의 연구소장   kypapa@iv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