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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그 고단한 즐거움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1) 공부란 무엇인가?

 

스따디(STUDY)

영어 스따디(Study)의 어원은 라틴어 스투데오(Studeo)입니다. 이 말은 원래 “~에 대하여 애정을 쏟는다(I am attached or favorable to~)”. “~을 추구한다(direct my efforts or attention to~)”, “~을 위해 헌신한다(I dedicate myself to~)”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어원으로 생각한다면, 억지로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닙니다.

스투데오(studeo)는 이탈리아어로 스튜디오(studio)로 바뀝니다. 여기에작은이라는 뜻의 ‘~lo’가 붙으면, 화가나 작곡가가 예술가들이 작업하는작은 방이라는스튜디올로’(studiolo)가 됩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몰두하며 헌신하는 작은 방이라는 뜻이죠. 스뜌던트(student)는 스투데오의열정으로 몰두하다라는 뜻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ent’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니 학생(student)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스스로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사람, 혹은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학생(學生)이라는 단어와 라틴어 어원과는 까마득하게 멀지요.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가 필로소피(philosophy)를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죠. 이 단어는 필로(philo)는 애(), 소피아(sophia)는 지()란 뜻이니, 철학이란 '지에 대한 사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발성을 강조했던 스투데오(Studeo)의 시각으로 보자면, "사랑하면 지를 깨닫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법 합니다. 지혜를 깨달으려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내 연구대상에서 무언가 얻으려면 먼저 내 연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벤쿄(勉强)

일본어벤쿄[べんきょう, 勉强]’는 힘쓰다[(つと)める]와 강제하다[()いる]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이죠. 그러니까억지로 애쓰는 일, 무리해서 노력하는 일’(勉め強いること)를 말합니다. 일본어를 처음 공부할 때 이 단어를 보고 뭔가 죽을 맛 나는 억지 공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식으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조금 이상할 겁니다.

우리가 쓰는 공부(工夫)라는 한자는 일본어에서 두 가지로 발음됩니다. ‘쿠우후’(くふう)라고 발음하면, 골똘히 생각한다, 궁리한다라는 뜻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가리키는 한국어 '공부'와는 의미가 다르죠. 한편 코우후(こうふ)로 발음하면 공사하는 인부라는 또다른 뜻이 됩니다.

일본어를 쓰는 사람들은 거의 의식하지 않지만, 왠지모르게 벤쿄(勉強)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모를 강제성이 느껴집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勉強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고 자발적인 꿍푸(工夫, 공부)로 전환해야겠지요. 이제 꿍푸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입니다.

 

꿍푸(工夫, kung-fu)

중국어에서 공부를 꿍푸(工夫) 혹은쉐시’[学习]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뜻의 니엔수(念書)라는 단어도 있죠. 꿍푸는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능력을 말합니다. 특히 꿍푸(工夫)는 지식을 몸으로 깨우치는 행위입니다. 비슷한 발음인 한자 공부(功夫)는 공부(工夫)와 거의 같은 뜻을 지니고 있지만, 흔히꿍푸라고 부르는 중국무술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는실력이 있고무술을 할 줄 알고능력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 표기에 따르면 어떤 신체적 단련을 하여 달인의 경지에 오른 상황을 모두 꿍푸라 칭합니다. 他半天工夫就学会了骑自行车”(그는 반나절 만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어)라고 할 때 자전거 타기, 이거야 말로 꿍푸, 곧 공부입니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꿍푸로 생각하는 중국식 사고방식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꿍푸(工夫, gong fu)에는틈 또는 시간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자네, 시간 있나?”라고 물을 때니 여우 꿍푸 마(你有工夫吗)?”라고 합니다. 시간을 스지엔(時間)이라고도 하지만, ‘꿍푸라는 말을 자주 쓴대요. 중국무술을꿍푸도 틈만 나면 수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꿍푸라고 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한자를 받아들인 것도 틈만 나면 공부하라는 의미였을까요? 공부는 이렇게 틈만 나면 하는 일상적 태도입니다.

 

공부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Studeo ergo Sum)

우리가 쓰는 공부(工夫)라는 한자는 공부(功扶)의 약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따디(STUDY), 꿍푸의 공통적인 뜻은 억지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싶어서 몰두한다는 뜻이지요. 벤쿄도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의미로 생각해야 하겠죠. 결국 공부란 스스로 즐겁게 하는 행위겠죠. 그런데 한국의 교육은 어떤지요.

첫째, 공부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애정과 창조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창조하려고 몰두한다는 의미입니다. 암기력도 중요하겠으나 그 전에 이해력, 학습력, 응용력,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책임을 분별하는 능력 등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공부하는 사람이란 지식(知識, knowledge) 이전에 삶에 대한 지혜(知慧, wisidom)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지식은 '정보'의 의미가 있지만, 지혜는 '분별하는 능력', ‘나눔의 능력이겠죠. 진짜 공부하는 사람은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이겠죠.

둘째, 마음공부가 더 중요합니다.  공부 잘 한다는 말은 어질고 슬기롭고 사리에 밝다 즉 현명(賢明)하다는 본래 뜻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똑똑하다라는 말은 공부와 동등한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공부라는 뜻의 한 부분일 뿐이겠죠. 먼저 현명해야 똑똑할 수 있건만, 우리사회는 현명하지 않으면서 암기만 잘 하면 똑똑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 독서(reading text)란 공부의 한 과정일 뿐 전체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공부는 역시 책을 읽는 것이네요라고 하신다면 제가 글을 잘못 썼거나 아니면 제 글을 전혀 잘못 읽으신 겁니다. 어느 분야에 서 있든지 그 분야에 헌신하고 몰두하면 그것이 공부입니다. 광의(廣意)의 공부는 평생을 두고 이루어질 과정입니다. 자습서를 달달 외워야 하는협의(狹意)의 공부는 공부의 작은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넷째, 한자 공부(工夫)에는 장인 공(), 지아비 부()가 있습니다.  쿵푸(工夫 또는 功夫)지아비가 되는 노력을 곧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어미가 아니라 지아비인 것은 여성을 인간 대접하지 않았던 인간 역사의 한계입니다만, 아무튼 남을 지도하고 앞서 나갈 정도로 지아비의 자격을 갖춘 장인(master)이 되어가는 과정이공부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한 존재라면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지 않아도 공부한 사람입니다.

다섯째, 그래서 공부는 과정입니다. 입학식만 있고 졸업식이 없는 과정입니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는 말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 곧 깨달음은 있었지만 더러워진 인간의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에서 말하는거듭남도 다른 의미로서 공부의 과정을 말한다 할 수 있겠죠. 공부의 목표는 것(thing)이 아니라 함(doing)입니다. 결국은남이 정해준 공부를 넘어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평생 해야겠죠.

니체가 말했던 초인(Übermensch), 늘 창조하며 자기 일을 놀며 즐기는 명랑한 어린아이 같은 '위버멘쉬'야말로 진짜 공부한 사람의 모습이겠죠.

"암기력이 좋은 사람은 공부를 소홀이 하기 쉽고, 글 재주 있는 사람은 속도는 빠르지만 글이 부실하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은 반복학습을 하지 않아 깊이가 없다."

정약용이 유배 생활하면서 제자 황상에게 보낸 편지 <삼근계>에 나오는 말입니다. 암기력이 좋다고, 글 재주가 있다고, 이해력이 좋다고 공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제공부=암기력=입시경쟁=신분상승이라는 좁은 패러다임은 전복(顚覆)되어야 합니다. 공부란 목적이 아니라 존재하는 과정이니까요. 율곡 선생님께서 용공지효(用功之效),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아야 한다”(『자경문(自警文))고 하신 말씀은 그대로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말하고 먹고 자는 것 일체가 공부의 길입니다. 굳이 목표라 한다면 단독자로서 나만의 꽃을 피우는 과정이겠지요. 나만의 무늬, 나만의 꽃 한송이를 피우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공부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공부할 때 존재합니다.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한송이 꽃으로 존재합니다.

ㅡ 공부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Studeo ergo Sum)

 

 

 

 

 

 

2) 성경 속의 공부, 다니엘과 하브루타

 

하나님은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과 그 밖에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으며,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꿈과 환상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ㅡ 다니엘서 1 17절 말씀

 

 

 

 

 

3) 인문학이란, 윤동주의 경우 

 

 

 

4) 가포눈눌의 인문학  > 주변인(周邊人)을 위한 인문학

"18)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ㅡ누가복음 4 18~19

 

 

 

 

5) 주변인을 위한 인문학

 노숙인을 위한 교실

  여주 소망교도소

 성매매체험여성을 위한 교육

 

 

 

 

 

 

이사야50 42011.06.20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