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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볼로 캠프]

* IVF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는 <지성운동> 꼭지를 통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자료를 연재 형식으로 공유합니다. 원글에 포함된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한국의 지성운동의 현황과 그 함의(5)

이원석 연구위원


4. 학습 공동체의 형성과 성숙을 향하여


4.1. ‘수유 + 너머’와 공동체 형성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적어도 초기의 재정과 리더십 발휘의 측면에서 보면, 수유 너머 공동체의 활성화는 고미숙에 기댄 바가 크다. 고미숙은 정확히 십년 전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휴머니스, 2004)라는 간증집(?)을 통해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소개하고, 자랑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법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앞서(2절 후반부) 고미숙이 언급한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매력을 일부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 전제는 무엇인가? 공동체의 형성에 있다. 실은 이게 바로 그 당시 수유+너머와 함께 양대 산맥으로 이해되던 철학아카데미와 구별되는 지점이었다. 철학아카데미가 갖추지 못한, 그리고 이후에 소운서원에서 만들어보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바로 그것이 공동체 만들기다.

수유+너머에게 있어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아까 “함께 모여서 읽고 먹고 마시는 공동체와 더불어 공유하는 삶”이라는 표현을 통해 암시한 바와 같이 식사를 함께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밥이 신성해서가 아니다. 매일 주기적으로 함께 식사하고, 이를 위해 돌아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분담하는, 즉 삶의 공유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유에서 대학로로 옮겨올 때에서야 마침내 연구 공간 안에서 “비로소 점심, 저녁 두 끼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77-8쪽). “식탁 겸 세미나 테이블로 쓰”게 되는 탁구대를 마련함과 아울러서 마침내 “밥상뿐 아니라 운동까지 해결되었다(78쪽). (대학로에서는 중요한 덕목인) 비용 절감에 더해 위에서 말한 삶의 공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저희가 저희를 규정하기 힘든 법이지요. 외국에서 이 곳을 찾아오는 지식인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통해 우리 특징을 알게 되어요. 외국에서는 공동체나 사회단체가 많이 있는데 학습과 생활을 함께 하는 곳은 없답니다. 영성공동체 하면 영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이지요. 생활올 전면적으로 함께 하면서 지식을 생산하는 곳은 별로 없어요. 우리 <수유+너머>라는 공동체의 기반이 지식 생산입니다. 외국인들이 이것을 모두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외국인의 거울올 통하여 거꾸로 우리를 봅니다. 공동체는 있는데 공부하는 곳은 없고, 연구소는 많은데 생활하는 곳은 없습니다. 밥 같이 해먹고 카페 운영하는 그런 연구집단은 없는 것이지요.”

수유+너머의 고유한 특징에 대한 고미숙의 간명한 설명이다. 그러니까 연구를 공동으로 할 뿐만 아니라 생활도 공동으로 한다. “최소한 두끼는 여기서 먹는다. 차 마시고 뒤풀이하는 곳도 여기이고 외부사람 만나는 곳도 여기이다. 생활의 70-80%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수유+공간>은 [……] 생활과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두 번 세미나를 참석하는 분들도 수백명이 있어요. 그러나 그 분들은 외곽에 있어요. [……] 그러나 실제 수유공간올 움직이는 사람들은 100% 여기에서 삽니다. 공부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지식을 생산하지요. 여기서 밥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합니다.”

물론 수유+너머가 조금 유별나기는 하다. 하지만 단지 교육만 수행하지 않고, 연구+교육을 병행하는 거의 모든 공동체들이 어느 정도로 삶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선생들끼리 공유하는 삶을 넘어서 모든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드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서로의 삶올 배우고 따른다. 함께 먹고 함께 읽는다. 함께 웃고 함께 논다.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올 배울 수 있올까? 간단한 거다. 함께 하는 것이다. 반드시 모든 삶을 공유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회집하는 시간과 공간을 늘려야 한다. 물리적 현존으로 함께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SNS 둥을 통한) 온라인 교제를 활성학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삶올 함께 하고 시간을 더불어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유+너머 안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들이 많다. 그 경우에 드는 비용이 바깔세상에서보다 월씬 적게 들어간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밥값과 찻값이 모두 저렴하다. 자기 책이 없다면 연구공간에 비치된 책을 봐도 된다. 주거 문제도 그렇다. 인근에 공간을 얻어 더불어 모여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부부조차도!

더욱이 여기에서 열심을 다해 공부하면.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강의와 집필의 기회가 열린다. 그 수입이 많지 않더라도 이곳에서는 생계를 꾸려갈 수가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가 공동체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보다 더 낫지 않는가? 릴리히는 이를 가리켜 잠재적 교회(latent church)라고 불렀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복음주의 지성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지 않나? 더욱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교회론적 인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점이 제대로 실행되었나를 자문해보면, 아마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게다.

마음은 몸과 공간에 직결되어 있다. 공동체 형성올 위해 안정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그 공간 안에서의 지속적 교제를 독려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연구실과 도서관, 강의실과 식당이 구비된 공간을 준비하고, 무료나 저가로 제공한다고 생각해보라. 역량 있는 소장 연구자들을 당장 그곳으로 불러 모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간 마련에는 경제적 부담이 문제가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한국 복음주의의 지성의 스캔들올 돌파할 수 있도록 중대형 교회나 혹은 교계의 독지가(篤志家)들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게 된 사회조차 연구소가 존립할 수 있던 이유는 펠릭스 베일의 쾌척(快挪)에 있었다.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공간 마련과 그 유지를 위해 누군가 희생하는 구조가 그동안 지배적이었다. 가령 새움은 한형식, 초기의 수유+너머는 고미숙과 이진경이 헌신했다. 철학아카데미도 운영위원들의 희생이 뒤따랐다고 들었다. 기독교 지성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러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지성의 제자도를 실현하고, 한국 사회를 새롭게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짐을 나눠져야 한다.

이에 더불어 연구 집단의 수익 모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협동조합은 소장 인문학자들의 존립 근거를 모색하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가장자리는 출자금과 조합운영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을 계속 모집하고 있다. 다지원은 갈무리 출판사를 운영하고, 출판 작업에 함께 한다. 또한 기독인문학연구원은 사회적 기업인 인문학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지역 교회와의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 지역 교회는 교육적 기능을 이러한 연구공간에 위임할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물론 앞서 말한 공간의 마련과 유지를 포함한 일정한 후원의 반대급부로서 또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서 더 나아가 교인의 성숙과 사회적 기여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연구공간과 지역교회가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