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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볼로 캠프]

* IVF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는 <지성운동> 꼭지를 통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자료를 연재 형식으로 공유합니다. 원글에 포함된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한국의 지성운동의 현황과 그 함의(3)

이원석 연구위원


2. 세속의 학습 공동체: 대학에서 세속으로(2)

이외에도 학습 공동체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곳들만 간단히 짚어보자. 길담서원은 “고전[을] 소리내어 몸으로 읽는 현대판 서당[을] 만들”겠다는 박성준 교수의 목적 하에 탄생하였다.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문지문화원 사이는 “문학, 예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2009년 9월에 시작한 문탁네트워크는 “친구와 함께 공부를 통해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농부가 되는 곳,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면서 좌파적 선인을 천명하고 있다. 특별히 하위 범주에 속하는 인문학 공간 문탁은 공부-공동체이고, 일상-공동체이며, 또한 주권없는 학교이기를 꿈꾸고 있다.

좌파적이기로는 한형식의 헌신과 지도력에 기대는 바가 적지 않은 세미나 네트워크 세움 또한 만만치 않다. “자본, 국가, 미디어가 독점하고 있는 지식과 그것의 생산 및 유통의 경로를 대중들 스스로 영위하기 위한 장”이며,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지식을 대중이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고 나누는 곳이고자” 한다.

아트앤스터디는 지젝의 국내 초청에 기여한 바로 주목올 받게 되었고, 인문학협동조합은 “20~30대 인문학 연구자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자기-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자유인문캠프는 학생들이 주도한다. “도대체 배후가 어디예요?”라는 질문에 “그런 거 없다.”라고 공식적으로 답한다.

참여연대 부설 조직인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참여사회아카데미를 뒤잇는 “진보, 인문, 행복의 배움터”(이기를 꿈꾸는 시민교육의 장)이다. “앎의 즐거움, 모든 변화의 첫 걸음입니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도서출판 푸른역사가 운영하는 푸른 역사 아카데미는 “제도 밖에서 역사의 미래를 찾다”라는 표제 하에 ‘역사 대중화’를 선도하고자 한다.

또한 "종합 인문주의 정치 비평지”를 표방하는 격월간지 <말과활>과 궤를 같이 하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만남과 우정, 상호 학습의 공동체이기를 꿈”꾸며, “함께-지각함을 통한 길찾기, 학습공동체이고자” 한다. 이 외에도 더 많은 곳들을 소개할 수 있겠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많은 경우에 배움의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훌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모여 하는 공부를 지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흥미롭게도 과거 “제3의 성”(<공부하는 엄마>, 7쪽)으로 분류되기도 하던 아줌마(!), 즉 주부가 증심에 들어서게 된다(수유+너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4절에서 다시 보기로 한다.

다른 하나는 배움의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양의 원래 의미에 새롭게 근접해가고 있는 셈이다. 교양(liberal arts)을 가리키는 라틴어(artes liberales)는 계급적 함의를 담고 있다. 노동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인 폴리스의 시민이면 알아야 하는 지식과 기예를 가리킨다. 애초에 인문 교양은 무목적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결과적으로 배움과 놀이를 뒤섞어 버리게 된다. 고미숙은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휴머니스트, 2004)에서 ‘수유+너머’에 대해 “지식과 일상이 하나로 중첩되고, 일상이 다시 축제가 되는 기묘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12쪽) 말한다. 우리는 그녀가 자신이 소속된 연구공간을 소개하는 방식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책에 대해선 다시 다루기로 하다).

또한 고미숙의 꿈은 “심포지엄을 축제로 만드는”(220쪽)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지식의 기쁨”(221쪽)을 회복하라고 촉구한다. 지식의 기쁨이 상실된 이유를 “지식이 삶으로부터”(221쪽) 유리된 데에 따른 것으로 본다. 이렇듯 대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참된 앎의 기쁨이 함께 모여서 읽고 먹고 마시는 공동체와 더불어 공유하는 삶(의 기쁨) 속에서 충족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