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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상열지사란 꽤 오랫동안 인류의 중요한 이야기 소재였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연애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사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근대적인 연애의 출현은 불과 100년 전의 이야기고, 서구 사회의 사례까지를 시야에 넣어 봐도 연애결혼이 삶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 300년 전이다.

그런데 이렇듯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인간사의 핵심을 관통하는 관혼상제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쏟아진 연애에 관한 담론들과 이미지들은 연애가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게 하는 기제이자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결국 연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연애의 부재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결격 사유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인식은 모쏠(모태솔로)’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 시작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의 청년들을 표현하는 단어로서의 ‘3포 세대3 요소에 결혼, 출산과 함께 연애가 포함된 것은 연애의 위상이라는 것이 결혼, 출산과 맞먹을 만큼 격상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연애의 보편화, 이로 인해 증가한 연애에 대한 강박, 연애 담론의 폭증과 함께 나타난 연애상의 표준화 속에서 연애라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의문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서론이 다소 길었지만, 오늘 소개할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은 바로 이 연애에 관한 의문들로부터 출발한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연애인문학이라는, 당찬, 그러나 조금은 생소한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곧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연애라는 행위와 그를 둘러싼 담론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 행동양식 안에 내재된 인간 사회의 단면들을 추출하겠다는 시도다. 때문에 책의 제목은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은 범람하는 연애담론들의 기원과 담론의 전개 과정, 담론체계의 구성을 문제 삼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후에 전개되는 각 저자들의 연애론, 혹은 사랑론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깊게 연애와 사랑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저자들의 연애에 관한 서술이 도달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연애의 불가능성이다. 연애에 관한 인식이 굳어지고, 연애의 과정이 정형화되면서 연애에 쏟아야 할 비용이 압도적으로 증가한 반면 연애의 주체여야 할 청년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저자들은 현대의 연애가 가진 속성을 불가능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연애는 곧 사랑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혹은 사랑을 대체하는 언어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랑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때문에 책의 한 대목은 사랑의 유일한 가능성은 불가능성이라는 말로 사랑을 정의한다.

그러나 책은 연애의 불가능성에 관한 서술을 늘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불가능성을 인류가 사랑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기제로 규정하면서, 사랑의 불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사랑과 연애의 양태들을 분석해 낸다.

그러니 이 책은 연애하지 못하는청년들에 의한, 청년들을 위한, 청년들의 사랑을 향한 분투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연애를, 나아가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사랑의 가능성들을 모색하는 이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 안에 있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관념들을 재구축하게 된다.

범람하는 연애담론은 때로 사랑을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연애를 못 하게만드는 제반 조건들 속에서 일상에서의 사랑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