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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와 이상한 여행을 떠날 계절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난 왜 앨리스로 서평을 쓰겠다고 했을까? 가을바람도 불겠다, 함께 동화 한 편 같이 읽어도 좋겠다 싶어 평소 읽고 싶었던 앨리스로 서평을 쓰겠다고 말해놓은 터였다. 하지만 책을 펴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앨리스는 나를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 여기저기로 쉴 새 없이 끌고 다녔다. 걸음이 느린 나로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개연성이 희미한 그 이상한 나라에서 불안하고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있기가 힘들어졌다.

이상한 나라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내 앞서 가는 앨리스가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회중시계를 가지고 달려가는 토끼를 따라갈 수는 있다. 나라도 신기하여 뒤쫓아가볼 것 같다. 하지만 갑자기 구덩이에 빠져버리면 난 그대로 얼어버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앨리스는 그런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처 떨어지기도 전, 한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도 전부터 지구를 뚫고 똑바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한다. 심지어 지구를 뚫고 떨어지면 호주로 떨어질지 뉴질랜드로 떨어질지, 거기선 누구를 만날지 상상한다. 청룡열차를 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격이니, 아무래도 범인(凡人)은 아닌 모양이다.

앨리스는 아무리 낯선 곳에 당도해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가 의기소침해져서 울거나 걱정하는 순간은 미지의 공간이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의 모험을 막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에 비해 자신이 너무 덩치가 클 때 주저앉아 눈물바다를 만들고, 위험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도 집에 가는 길을 찾기보다 새로 만난 강아지에게 빠져 든다. 거울나라로 성큼 들어가서도 앨리스는 돌아갈 길을 찾기보다 서둘러야 해. 안 그러면 거울나라 집의 다른 곳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라며 달리기 시작한다.

앨리스의 여행은 종횡무진이다. 새로운 곳에 불현듯 떨어져서 언제 어떻게 도착했는지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상한 나라는 그저 우리 앞에 나타나고, 우리는 그곳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여행하고 대화하는 앨리스를 발견한다. 어느덧 나도 차근차근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지도를 던져버린다. 지도에서 눈을 떼고 앨리스가 만나는 요상하고 흥미진진한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캐릭터 하나 하나가 모두 환상적인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단장하고 내게 말을 건넨다.

무료하고 색감 없는 일상에 지쳐있다면, 신기한 동물들과 사건들이 넘쳐나는 새로운 나라로 인도해줄 앨리스를 만나보길 권한다. , 앨리스와 여행을 떠나려면 몇 가지 준비할 게 있다. 가을바람이 들어오는 조용한 공간과 편안한 의자, 앨리스를 만날 수 있는 두 권의 책, 그리고 무엇보다 앨리스가 뜬금없는 골목으로 달려가도 짜증을 내기보다는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넉넉한 가을 마음이 필요하다. 이 가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형형색색으로 당신의 시간을 물들일 수 있는 기회를 꼭 잡으시길 바란다.

 

박은영 / 복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