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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대한 대화의 단층들, 그 깊이를 들여다보다

-한국교회탐구센터 편저,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 IVP-

 

박은영

 

교회에서 창조과학 특강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한번쯤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가 남긴 자국의 지질학적 증거라는 그랜드캐년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토록 광대한 자연에 그토록 뚜렷하게 남겨진 하나님의 일하심의 흔적이라니!! 하지만 사실 학교 수업 시간에 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명백한 증거앞에서도 은혜만으로는 다 떨쳐버릴 수 없는 당혹감도 느끼게 마련이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소개하는 한국교회탐구센터 스펙트럼 시리즈의 신간지질학과 기독교 신앙』은 창조과학 논쟁의 뜨거운 감자인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을 다뤘다. 이번 책은 차근차근 쌓여온 지층처럼, 이 땅의 형성과정과 모양새에 관한 오랜 세월에 걸친 논증과 관찰, 실험과 대화를 차분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창조과학 강의를 들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사람들의 간지러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책이다.

박희주 교수는 성경 텍스트에서 근대 지질학이 독립하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서 이문원 교수가 설명하는 지질 구조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조석주 교수가 정리하는 과학적 지질학의 연구방법론 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독교인으로서 현대 지질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정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차분한 설명이 끝난 후에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경 기사 내용과 그와 모순되는 것만 같은 지질학 연구 성과 사이에서 어떤 인식을 보이고 있는지 조사한 정재영 교수의 글과, 노아 홍수 기사에 대한 성경해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알기 쉽게 정리한 송인규 교수의 글이 기다리고 있다.

스펙트럼 4호인 이번 호에는 특별히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양승훈 원장의 인터뷰도 실렸다. 양승훈 원장은 1980년대에 한국창조과학회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대학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과 창조과학의 역사 등을 접하면서 회의를 품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순간에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질문하고 연구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 인터뷰를 통해, 양 원장이 좁은 시야에 갇혀있던 창조과학자에서 과학계와 대화하고 과학의 연구 성과를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는 창조론자회심하기까지의 생생한 과정을 따라갈 수 있다.

이번 호 북리뷰 코너의 구성도 퍽 재미있다. 여섯 편의 서평 중 세 편은 과학 일반 혹은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책을 비평함으로써 과학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태도가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이은 세 편은 이번 주제와 연결되는 지질학 관련 책을 소개한다. 양승훈 교수 인터뷰를 읽고, 지질학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에 대한 글들과 여섯 편의 서평까지 완독하고 나면, 독자들은 그동안 파편적으로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창조과학 논쟁의 핵심에 있는 지질학 관련 논제들을 정리할 수 있다. 또 그러다보면 기독교 신앙과 과학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좀 더 깊은 고민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탐구센터는 이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것만 같은 과학과 신앙을 연결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과학 없이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이 시대에. 신앙인들이 신앙도 과학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스펙트럼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