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정통주의 신학』,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등으로 복음주의 진영에 신선한 관점을 제시했던 철학자 제임스 K. A. 스미스가 최근 기독교 제자도에 관한 과감하고 새로운 연구를 내놓았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삶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제자 훈련이나 기독교 세계관 등이 보여주듯이 제자도가 지식을 중심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한 복음주의 제자도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라는 요청이며, 일종의 포스트모던적 제자도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이런 주장을 담은 제임스 스미스의 연구는 삼부작인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이상 IVP), 『Awaiting the King』을 통해 체계적으로 제시되었고, 『습관이 영성이다』(비아토르)를 통해 좀 더 대중적인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주장은 새로운 인간론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기존 복음주의/칼빈주의 진영의 제자도가 주지주의적 인간론 모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즉,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의식이 결정하며, 인간의 의식은 세계관, 사상, 신념, 믿음 등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근본 요인은 지성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삶을 욕망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좋은 삶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되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즉, 인간의 행동은 이성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좋은 삶을 향한 욕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나 성경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제자 훈련 방식은 지식의 변화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스미스의 분석입니다. 결국 삶을 변화시키려면, 일차적으로 지식이 아니라 욕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또, 이미 형성된 욕망은 어떻게 재형성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스미스는 습관의 힘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습관이란 무의식의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며, 덕 또는 성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지속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 습관의 길을 따릅니다.
여기서 제임스 스미스는 덕을 예전(의례)과 연결시킵니다. 예전은 특정한 서사의 내면화를 위해 주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실천을 말합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성향은 의식적 사고가 아니라 반복적 실천, 즉 예전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거나 재형성됩니다. 이는 욕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믿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본래 우리는 믿는 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믿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삶 속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실천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의례들이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예배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교육적 기능에서 시작하여 새롭게 합니다. 예전의 일차적 기능은 우리 생각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 성품의 형성입니다. 보통 예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신앙고백 또는 찬양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스미스에게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거나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성경의 서사를 물질적 형태로 구현한 형식 속에서(예를 들어, 세례와 성찬 등) 우리의 무의식이 하늘과 만나게 합니다. 지금까지 예전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초월이나 신비와 무관한 일종의 기념으로 이해되어 왔다면, 스미스는 이와 같은 탈주술화 또는 탈육신화를 근본적으로 전복하고자 합니다.
스미스는 예전이 교회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도 있다고 말합니다. (세속) 예전은 쇼핑몰에도, 대학에도, 회사에도, 군대에도, 국가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 속 수많은 세속 예전에 참여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무의식 속 욕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우리의 제자도 형성을 위해 세속 예전에 담긴 서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런 관점에서 공공 신학(public theology) 또는 문화 비평을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의례와 실천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미 구조화된 다양한 의례적 실천들을 해석해내는 작업은 그 자체로 일종의 기독교적 문화비평 또는 공공 신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속 서사에 맞서는 대항적 서사가 가능해지고, 대항적 정치공동체(폴리스)로 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분석은 현대 복음주의 제자도가 지나치게 주지주의적이고 근대적인 관점에 경도되어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제자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고 반성해야 한다면, 제임스 스미스는 우리에게 매우 적실한 터닝 포인트를 제시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주일 / 복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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