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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만에 맑고 따스한 봄날이었던 오늘, 연구원들과 골목길을 지나다가 라일락 향기에 잠시 취했습니다. 향긋한 봄이 어디 가지 말고 이대로 머물러 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3월 말, 일주일 사이에 기독교세계관, 동성애, 복음주의와 관련해서 연달아 글을 써냈습니다. 여러 모임에서 숙제를 준 것입니다. 하루에 시험 세 개 보는 대학 시절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정리하는 글이 아니라 제 생각까지 담다보니, 지난 두 달 간 느낀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주제든 저의 복음주의 신앙은 어떤 것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교회에 대한 실망을 넘어 자기 신앙도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흔들림은 사실 그리스도인 개인이 만들어내는 문제라기보다 이 시대와 교회가 일으킨 지진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복음주의운동의 가치에 기초한 복연도 같은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복연이 ‘복음주의’라는 낡은 간판을 계속 달아야 하냐고 묻습니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와 구분이 안되는 상황이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복음주의는 분명히 근본주의와 결별하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나중에 복음주의 진영의 일부가 근본주의운동에 합류하면서, 언론은 양자를 구분해서 사용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곤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신앙운동을 핵심적으로 표현할 말을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복연은 이처럼 흔들리는 지진대 위에서 복음주의운동의 가치를 다시 성찰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운동 전통에 따라,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불러오는 ‘회심’과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묵상하는 태도를 다시 붙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동시에 기독지성과 사회참여라는 현대 복음주의운동의 과제 또한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복연은 특히 기독지성과 기독지성세계의 선교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소명을 계속 부여해주시는 한, 복연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동역자님의 삶에도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길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2018년 4월 

소장 이강일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