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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터칼럼] 좌절된 욕망

category 복연 칼럼 2017. 11. 24. 14:43



좌절된 욕망

 

  근래에 들어 기독교(개신교)는 아예 반지성주의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난 겨울과 봄을 거쳐 아직도 이어지는 태극기 집회에서 나타난 일부 개신교인들의 행태가 사회적으로 반지성주의로 치부되더니, 지난 가을은 이젠 꺼져가는 불씨인 줄 알았던 창조과학 문제가 한 장관후보자 지명을 둘러싸고 다시 일어났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책에서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이 반지성주의의 뿌리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복음주의가 청교도주의를 제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자라났고, 이는 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토양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지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한 장관 지명자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거쳐서 대학을 다니면서 기독교와 만났고, 과학기술자로 성장했으며, 그 과정에서 창조과학회 활동을 했다. 그는 장관 지명 후의 일련의 행적에서 자신이 창조과학에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는 결정적으로 지구 나이 6,000을 부정하기를 거부했다. 말하자면 그는 후미에 밟기를 거부했고, 결국 장관에 임명되지 못하고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그의 모습에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기 신앙을 부정할 수 없다는 조그만 신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문제를 조금 더 역사적으로 조금 더 안쪽에서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창조과학이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처음 시작은 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던 과학기술자들을 통해서였다. 이들에게는 명성도 힘도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동시에 세상 속에서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창조과학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크게 환영받았고, 지금까지도 이름을 날리는 교계 지도자들의 격려와 지지도 받았다.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문가로서의 학자적인 삶과 신앙적인 삶을 조화시키는 모범으로 추앙의 대상, 삶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 흔히 전국 단위로 수천 명에서 만여 명씩 모이던 선교단체들의 수련회 열기와 뜨거운 찬양과 기도의 밤을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에는 직업 분야별로 전문 영역별로 그렇게 활동하는 일이 장려되었다. 소위 말하는 영역주권 사상기독교 세계관의 힘이었다.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발전과 성장의 경로를 밟아가면서, 교회도 함께 성장하고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교회의 젊은 지도자들은 주로 미국의 영향을 받고, 또 네덜란드식 칼빈주의의 영향도 받아, 세상 속에서 더욱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던 시절이었다. 창조과학은 그 하나의 상징이자 정점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던 방식이었다. 배우가 상을 받거나, 운동선수가 성취를 거두었을 때, 인터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들은 교회 전체적으로 칭찬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그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의 TV 카메라 앞에서 신앙을 부인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당시 지역교회의 현실은 창조과학을 그렇게 즉각적으로 흡수하지 않았다. 당시 교회의 분위기는 보다 영적인 것을 중시하고, 창조를 굳이 그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신앙의 대상을 과학화하는 데. 거부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맞춰 컬러 슬라이드로 이루어지는 화려한 강의, 박사와 교수 타이틀을 달고 이루어지는 세련된 설득, 젊은 세대의 환호와 자신감까지 교회는 곧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역교회의 교인들이 창조과학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창세기의 성경말씀이 정확무오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할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에 동의한 것뿐이었다. 창조과학은 학문으로 교회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형태를 띤 것이었다. 전파자들이 가진 교수 박사 타이틀에 의해 지역교회는 계몽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에게 강단이 개방된 곳도 많았다. 전반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교회는 점점 창조과학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창조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사회 전체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과학과 신앙을 뒤섞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사회는 용납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혼란에 빠진 이들은 학교에서 자연과학 과목을 통해 진화에 대해 배우는 청소년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버렸고, 다른 이들은 신앙 문제 때문에 고민에 빠졌으며,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학교는 학교, 교회는 교회라는 이중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창조과학이 의도한 것은 교회와 세상을 통합하는 사고방식이었지만, 그 결과는 철저한 이원화였다. 그리고 마침내 창조과학은 모두의 지탄을 받고, 공직후보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사상으로 판명되었다. 창조과학은 다른 모든 것처럼 찬사와 경멸 사이를 오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나를 포함해서.

  창조과학을 반지성이라고 말하면서 도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기독교계는 지금까지 그런 일을 반복해왔다. 어떤 일이나 프로그램이 붐이 일었다가도, 문제가 생기고 세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을 격려하고 지원했던 교계 지도자들이 이런 일에 책임을 진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물론 당연히 창조과학에 반대한다. 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걸쳐서 형성된 한국 교회의 마지막 성장의 흐름과 연관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사회의 발전이나 성장과 궤를 같이해서 성장해왔다. 사회 전체의 흐름에 편승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였고, 교회도 그에 맞추어 중산층 교회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대형교회 또는 대표적인 교회는 실상 대부분 중산층이 주류를 차지하는 교회가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교회는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서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캠퍼스 선교단체들은 이런 생각을 부추겼다. 그때는 그것을 얼마나 장려했던가. 말하자면 이것은 영향력에 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욕망에 대한 문제였다. 이제 교회가 충분히 커졌으니, 충분한 능력(경제력)과 힘을 가졌으니, 교회 안에 사회의 엘리트들이 많이 있으니, 기독교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통로로 전문 분야들이 사용된 것이다. 그 중에선 당연히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있고. 창조과학은 그 중에서 가장 참담한 실패사례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럼에도 창조과학이라는 반지성적 태도가 주류 기독교 사회로 손쉽게 흡수된 것은 미국식 프로테스탄티즘의 토양에 반지성주의가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제든지 타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러한 반지성주의는 기독교 교세의 약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요즘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말처럼 종교적 반감과 정치적 반감이 결합하고, 증오와 증오가 결합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불러야 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영향력을 발휘하려던 열망이 좌절되자, 점점 더 극단적이고, 방어적이면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움직임이 전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 사회에서 보이는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가진 사상적 배경인, 미국식 민주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모양새다. 그런데, 영향력을 발휘하고 행사하는 과정에서 미국 기독교가 가진 잘못된 사례들, 특히 반지성적인 사례들을 가지고 와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힌다. 이제는 이따금씩 한국 기독교 자체적으로도 반지성주의가 툭툭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분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독교 반지성주의가 다시금 내재화되고, 내부 논리로 정착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교회가 위축되면 위축될수록, 그 일부는 반지성적 태도를 포기하지 않고, 이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다. 타자를 악마화해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들에게 지식도 부족하고, 지식을 다시 습득할 생각도 없다는 걸 감추는 방법이기도 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한 기독교 지성 같은 것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조차도 또 다른 형태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좌절된 욕망의 응어리일런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정직한 용기이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능력이상으로 커져버린 입과 틀에 박힌 생각을 멈추는 일이다. 섣부른 판단과 견해를 거두고, 조용히 눈을 뜨고 사태의 전개를 바라보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거기에서 다시 지성이 자라날지도 모르고.


 이원재 목사[각주:1] / 복연 연구원


  1. 목사이자 독립연구자로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이론과 탈식민주의의 관점으로 한국 사회와 기독교를 새롭게 바라보려고 한다. 아볼로클럽 사회과학 심화스터디 및 아볼로스투디움 튜터 등으로 복연과 함께 하고 있다. 최근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새물결플러스, 2017)을 번역 출간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