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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여자는 이름이 클레오파트라래!?

8살 딸래미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클레오파트라는 포테이토칩 아니야? 어떻게 사람이 과자 이름을…”

십 년 전에 나온 과자인데, CM송만 남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지..

그녀는 “세상에 맞서는 100명이 여자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읽고 있다. 세계사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들을 한 페이지 씩 간결하고 좀 쿨하게 소개한 책이다. 군더더기 별로 없는 프로필 소개 정도이며, 이 책의 발간 의도가 그러한지, 

“이 여자 대단하지? 너도 할 수 있지 않겠니?” 정도의 느낌이다.


나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이 그렇게 많았다. 나도 전설의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전부터 시작해서 (이름 쥑인다, 출판사 이름이 계몽사라니…) 각종 위인전 전집을 도장깨기 하듯 독파하곤 했다. 해외 위인은 조지 워싱턴으로 시작하고, 국내 위인은 세종대왕으로 시작하는 위인전 전집에 들어가는 여성은 3-40권을 훑어봐도 퀴리부인, 헬렌 켈러, 나이팅게일, 그리고 한국의 신사임당, 이 4대 천황이 다였다. 쓰라리지만 그 당시 시대를 돌이켜보면 유별난 것도 아니다. 그 당시 위인전에 대한 유감은 또 있다. 대부분의 위인전은 위인의 유년 시절 비범함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나 어찌 알았누 싶은 꼬꼬마 시절의 눈물겨운 미담(보통 효도, 애국, 박애 등)이 빠질 수 없다. 그러다보니 베토벤, 슈베르트 할 거 없이 그야말로 철인에 가까운 완벽한 인간들로 묘사된다. 위인들은 자신 분애의 탁월함 뿐 아니라 겸양과 겸손, 모든 자연 세계에 대한 애정, 주변에 대한 배려로 가득 차있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신적 인간들이었다.

조금 자라서 맥아더 장군이 전쟁광이며, 그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이 실은 괴팍함, 막장 드라마 수준의 이성 편력, 술과 마약 등등으로 점철되었다는 충격적 사실에 매우 당혹했다. 한 분야의 장인들이 인격적 측면에서도 통합적인 위인이길 바라는 마음은 허황될 수도 있지만 좀처럼 버리기 싫은 기대이다.


요즘은 위인전 대신 인터뷰가 많다. 신문, 잡지, 인터넷 할 거 없이 그렇고 나도 즐겨 읽는 편이다. 대중 매체의 인터뷰에도 인터뷰이의 신화 만들기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경영만 잘 한 사람, 운동만 잘 한 사람, 연기나 노래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닌 두루두루 “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은 나 역시 그렇다만 가끔 가짜 뉴스 수준으로 뻥튀기 되는 게 문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책장의 책들을 훑어본다. 음, 저기 A의 저자는 이후 성추문을 일으켰다. B의 저자는 물의를 일으키며 교회를 떠났다. C의 저자는 평화의 사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사이코패스 수준의 성폭력 범죄자였다. 다른 책도 아니고 신앙 서적의 저자들이니 참 문제다. 그들이 쓴 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까지 거르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이 시점에서 다윗과 시편이 어느 정도 적절한 참고가 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질 뿐이다. 누군가 큰 업적을 이루었을 때, 그의 업적과 인품을 적절히 분리하는 자세는 의미있겠다. 언제 또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그게 어쩌면 성경적 태도 아닌가.  죄인들의 세상에 예수님 외에는 결코 ‘위인’도 ‘신화’도 있을 수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