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소리》 235호에 실린 국민대IVF 박진우 학사의 복연GLC+ 특강 <북한, 다시보기> 후기를 공유합니다.
(자료 제공: 《소리》)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며칠 앞둔 주일 오후였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 광화문 쪽을 지나던 중, 미국 대사관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확성기로 무언가를 외치는 무리를 보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보수 단체의 집회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들이 내건 플랜카드의 문구를 보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Mr. Trump, We are not afraid to die. We want you strike North Korea NOW.”
대사관 앞에 걸린 시위대의 문구에 트럼프 대통령이 반응할 리는 만무했지만, 타국의 수반을 향해 전쟁을 구걸하며 조아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정말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장면이 북한을 대하는 우리 모습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북한을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북한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섬세히 이해하려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되었든 협상이 되었든, ‘이해’에 앞서 ‘대처’만이 화두에 오르곤 하지요.
북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통일 문제와 연결되곤 합니다. 통일은 헌법에 명문화된 오랜 가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분단이 고착화되고 생존 이산가족의 숫자도 갈수록 줄어들면서, 지금 세대에게 통일의 당위를 호소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 IVF를 통해 통일과 관련한 강의를 듣곤 했지만, 당위만으로는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 통일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이 저를 복음주의운동연구소(이하 복연) 강의로 이끈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복연 강의는 2회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습니다. 1강에서는 김성보 교수님(연세대 사학과)이 <북한의 꿈과 현실 : 해방, 분단, 인민민주주의>라는 내용으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사학과 교수님답게 한국전쟁 전후로 진행된 북한 체제의 형성 과정, 그리고 북한 민중의 삶에 대해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신탁통치를 둘러싼 국내 반탁운동의 여파가 분단에 미친 영향, 좌․우간 극한 대립 속에서 잊어버린 여운형 등 중도파들의 통일운동 노력, 그리고 전후 성립된 북한 체제가 북한 민중의 삶과 사고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보여주시면서, ‘이념과 체제의 관점을 고집하지 말고 민족의 관점,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강의 중 인용되었던 백기완 선생의 김구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그는 김구를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외세와 맞서 싸울 줄은 알았지만 외세를 이용할 줄은 몰랐다”고 평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정세 속에서도 새겨둘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의 외교가 중요시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이지만, 정작 외교적 이슈를 두고서는 감정적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광경을 종종 목도하곤 합니다. 외교라는 것을 어떤 단면이나 결과물로만 판단하기보다, 그 과정의 세세한 결을 보아가며 평가하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강 <북한 현실과 21세기 통일>은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님(동아일보)이 맡아주셨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까지 졸업한 소위 엘리트 계층 출신이기도 하고 평소 페이스북의 분위기로 보아 조금 딱딱한 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위트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한 분이셨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북한 사회 내부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해주셨는데, 이 지면에 다 담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주성하 기자님은 지난 정부가 주장한 ‘통일대박론’의 허구, 중국이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려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통일 논의 방향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특히 제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체제 뒤에 가려진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흔히 북한이라고 하면 자유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경직되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지요. 하지만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북한에서는 흔히 일어난다고 합니다.
가령 한국에서는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상사에게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개진한다든가 하는 일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듭니다. 상사 내지 조직의 평가가 개개인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노동자들이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전혀 낯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고용되어 일해야 하고, 일터를 사인(私人)이 아닌 국가가 소유하면서 개개인에 대한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이지요. 체제의 합리성이야 북한이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겠지만,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일지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남한보다 더 자유롭다’는 설명이 단순한 역설로만 들리지는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주성하 기자님은 통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참석자의 질문에 “나 역시 통일을 위한 논리가 없다”는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대 국가 간의 물리적 통합만을 통일로 여기는 지금의 사고를 벗어나 다양한 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시며, 지금 세대가 통일을 두고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보길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강의를 맺으셨습니다.
복연에서의 북한 강의를 듣고 난 뒤에도, 강의를 듣기 전 처음 들었던 통일에 대한 질문이 명료하게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수확이 하나 있었다면, 제 안에서 북한이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다뤄지는 딱딱한 모습이나 단편적인 모습의 북한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모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북한으로 말이지요. 세상사에 100% 선이나 악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역시 그러한 다면성과 복잡성을 전제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만 통일을 향한 길이든, 혹은 제3의 다른 길이든, 다음 세대가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 없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지 않을까요.
-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종종 전공과 거리가 먼 분야에 뛰어들곤 하는 5년차 학사. 12월부터는 일본 도쿄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할 예정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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