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스토프 하나님의 정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복있는사람.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이 책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정의론을 새롭게 발전시킨다. 출발점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공 기독교의 차별적 상황과 법이 집행되지 않아 학대를 당하는 온두라스의 불의한 상황이다. 현대 정의론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존 롤즈의 이론으로는 이와 같은 차별적이고 불의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 기독교의 정의론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원서는 Journey toward Justice이다. “journey”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 책은 딱딱한 학술적 용어가 아닌 수필적 문체로 쓰였다. 마치 노련한 철학자가 어린 아이와 청소년을 앉혀 놓고 자기 얘기를 구수하게 풀어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볍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는 월터스토프 정의론의 기초가 되는 권리 이론과 성경적 논증이 촘촘하게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좀 더 학술적인 Justice: Rights and Wrongs 보다 대중적이지만, 그의 정의론의 요지를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월터스토프 정의론의 특징은 현대 정의론을 사실상 견인하고 있는 존 롤즈 정의론에 과감하게 도전한다는 것이다. 롤즈 정의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따라 정의를 공평과 분배의 문제로 바라본다. 따라서 롤즈에게 정의의 관건은 한 사회에서 공평한 분배가 가능한 보편적 기준을 정립하는 데 있다. 비교적 급진적인 분배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도 사실상 이런 분배의 원칙을 마련하는 관점으로 정의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월터스토프 정의론은 분배가 아니라 권리의 관점에서 정의에 접근한다. 권리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일종의 자연권이고 보편적 인권이다. 이 보편적 인권의 기저에는 침해되지 말아야 할 존엄성이 놓여 있다. 이 땅에서 학대받는 모든 사람은 단순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침해받은 것이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시혜적 대우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이렇게 학대받는 자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정의의 기초다. 월터스토프는 이런 관점으로 정의를 이해해야만 정의가 충분히, 올바르게 이해된다고 주장한다.
월터스토프가 한국 기독교의 상황을 깊이 의식하면서 이 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의론은 꽤나 우리 상황에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많다. 그가 남아공과 온두라스를 예로 들면서 기존 기독교 정의론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차근차근 펼치는 성경적 논증을 읽다보면 마치 한국교회를 향해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이는 왜곡된 정의론의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문제이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문제를 풀려면 세계 기독교의 지평 속에서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정의를 고민하는 모든 기독교인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월터스토프의 도전적인 이 책이 많이 읽혀서 한국 기독교에 논쟁과 균열을 일으키고 생산적인 변화로 연결되길 소망한다.
이주일/ 복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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