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웬델, 2013,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그린비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은 지난 20년 간 많은 사람들의 관점을 변화시킨, 장애와 질병에 대한 사유의 기본서다. 여성학 연구자였던 저자는 1985년 몸의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명확한 원인이나 병명을 찾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근육통성 뇌척수염’이란 진단을 받는다. 이후 그는 계속되는 근육통과 극심한 피로, 어지러움, 구역질, 두통 등 다양한 종류의 고통을 만성적으로 안고 살아가게 된다. 몸이 달라지자 생활을 바꿔야 했고, 직업과 사회생활의 영역에서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장애를 얻은 후 장애인들이 쓴 글을 찾아 읽고 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웬델은 그들이 장애와 함께 살면서 터득하고 축적한 지식과 경험에 놀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건강을 잃어가고 장애화되어가는 존재인 인간에게, 먼저 장애와 질병을 경험한 이들의 지식과 경험이 더없이 귀중한 배울거리임을 깨달았다. 이에, 저자는 본격적으로 장애인들과 소통하고 장애에 대해 연구하고 수업을 개설했다. 거부당한 몸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저자 자신의 경험과 장애에 대한 여성주의 장애학의 사유를 부드럽게 풀어쓴 책이다.
의학은 사람의 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비정상’인 몸을 통제한다. 사회는 ‘비정상’인 몸을 가진 사람을 ‘우리’가 아닌 ‘그들’로 타자화시킨다. 하지만 사실 의학적으로 모든 것이 ‘정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은 없으며, 그나마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또한 사고나 노화를 통해 신체적 변화 과정을 겪게 된다. 웬델은 현대 의학이 몸을 통제할 수 있다거나, 마음이 몸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람들을 얼마나 얽매고 있는지 지적한다.
내가 속한 사회는 개인의 질병이 만성적임을 받아들이는 일을 곧 희망을 포기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것은 아픈 사람은 그런 상태로는 괜찮지 않기 때문에 나아지려고 하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성질병은 만성적인 괴로움과 불행을 의미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중략)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것만큼 아프지 않다고 의심하는지, 아니면 내가 강한 척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자주 있다. 건강하거나 괴롭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사회적인 의무가 주는 무게도 느낀다. 하지만 나는 항상 아프지만 자주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것이 내가 사는 문화에서 아주 이상하게 보인다는 결론도 내리게 되었다.(127-128쪽)
건강한 것이 정상이며 건강해야 행복하다는 환상은, 병이 걸리면 낫거나 죽어야 한다는 강박을 낳는다. 그래서 아픈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며, 건강한 사람들은 건강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사회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낙인을 찍으며 이들을 비난하고 이들의 사회적 역할을 박탈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 좋은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건강이 행복의 필요조건이라는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은 ‘항상 아프지만 자주 행복하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우리 사회는 편리하게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정상인’이 편하게 영위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구조에 맞지 않는 신체는 의학적 진단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68혁명 이후, 장애가 개인의 신체적 손상에서 기인하기보다는 특정한 신체에만 적합하게 만들어진 사회 구조가 사회구성원들을 장애화시킨다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장애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들이 던진 물음표는 현재의 ‘장애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탄생시켰다.
장애학은 사회와 사회가 사람들의 몸을 긍정하거나 그 몸의 특성을 인정해주기보다, ‘다른 몸’을 교정하려 하거나 배제시키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또한 장애학자와 장애인들을 이러한 사회적 과정이 비단 장애인들뿐 아니라, 예비장애인인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배제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이거나 예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웬델은 장애인으로 살면서, 사회가 함께 장애와 질병에 대해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대다수 예비장애인들에게 장애는 아직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며, 장애인은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웬델은 그들이 더 늦기 전에 장애와 질병과 악수를 시도해보길 권하는 마음으로 『거부당한 몸』을 내놓았다. 나도 웬델의 초대장을 전하며,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재단해놓은 ‘건강’이라는 좁디좁은 영토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보길 권한다. 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장애학 책을 읽고, 자신의 몸의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들을 가만히 응시해보라. 그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의 다양성에 자신을 맡겨보라. 그렇게 가지게 될 새로운 시선 안에 들어오는 몸 중에 거부해도 될 만큼 빈약한 이야기를 가진 몸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박은영 / 복연 연구원
- 이 서평은 박은영 연구원의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 ‘소란스러운 동거’에 먼저 게재되었던 글을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복연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땅에 대한 대화의 단층들, 그 깊이를 들여다보다 / 박은영 (0) | 2018.08.13 |
---|---|
[북리뷰] 근대를 만든 사회적 상상들 (0) | 2018.06.14 |
[북리뷰] '나'는 정말 누구일까 (0) | 2018.04.16 |
[북리뷰] 과학을 인문학의 눈으로 봐야 하는 이유 (0) | 2018.04.11 |
[강좌리뷰]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복연GLC+ 북한 특강 후기) / 박진우(소리 2017.12.) (0) | 2017.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