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인문학의 눈으로 봐야 하는 이유
-노에 게이치, 『과학인문학으로의 초대』, 오아시스, 2017
과학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패러다임이자, 자연과 인류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급속도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과학에 비해,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문학적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학은 모든 사람의 일상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둔 채 두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과학자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전공 분야 일에 지쳐 각자의 분야나 과학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할 여유가 없다.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분야가 늘어나고 생명에 대한 과학적 조작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과학에 대한 성찰과 고민에 일반인들이 동참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의 과학철학자 노에 게이치의 『과학인문학으로의 초대』(오아시스, 2017)는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생소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과학인문학 입문서다. 책은 과학사와 과학철학, 과학철학을 두루 다루고 있음에도,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다.
두껍지 않다고 책의 내용이 수박 겉핥기식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먼저,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사를 알기 쉽게 풀어준다. 저자는 여기에서 과학이 발전할수록 규칙적이고 정교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 세계에 대한 시원한 설명을 제공하리라는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사실들을 소개한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사람들은 자연세계의 모든 물질과 현상을 관통하는 단순한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이 계속되고 과학 이론이 정교화될수록, 세계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정교한 과학지식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들도 계속 밝혀졌다. 이에 더해,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발표한 1962년 이후에는, 과학자들이 과학 지식을 발견해가는 과정의 합리성마저도 의심 받게 되었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도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도 많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이 환경을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사회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장과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것은 우리가 과학, 인문학, 그리고 과학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은영 / 복연 연구원
'복연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거부당한 몸, 장애학을 만나다 (0) | 2018.06.11 |
---|---|
[북리뷰] '나'는 정말 누구일까 (0) | 2018.04.16 |
[강좌리뷰]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복연GLC+ 북한 특강 후기) / 박진우(소리 2017.12.) (0) | 2017.12.27 |
[북리뷰]우리는 언제쯤 정의로워질 수 있을까? (0) | 2017.09.25 |
[북리뷰] 개념 없는 사회에 밝히는 개념의 촛불 (0) | 2017.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