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쓰라린 삶에 철학으로 덧대기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한겨레 출판, 2018)를 읽고

박찬주(복연 자문위원, 평화누리 대표)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젊은 청년이 미세먼지 마스크 하나 쓰지 않은 채로 손을 흔들며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다.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면서 미세먼지도 심한데 왜 저렇게 주차장 앞에서 인사를 하게 하는 거냐고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남편에게 대뜸 화를 낸다. ‘과잉 친절이야, 맘에 안 들어하고 계속 투덜거렸다. 내가 좀 까칠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진영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나는 집사가 아닙니다.’, ‘나는 성도도 아닙니다.’ 라고 하시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을 때도 제대로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분이셨다. 예배 중 특송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장 은혜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진영쌤은 독일에서 유학 하다가 한국 와서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배달주문이라고 했다. 1인분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집까지 갖다 주는 것을 보면서 필요 이상의 친절이라고 하셨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를 열 번쯤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한국 사회는 과잉친절의 사회라고, 특히나 젊은 청년들에게 저임금으로 감정노동을 과잉으로 시키고 있다고 목에 힘줄 서도록 외쳤다. ‘그래, 내가 까칠한 게 아니었어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게지.

그 이후로도 주일날이면 진영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 삶에 철학이라는 게 슬그머니 들어왔다. 위기철의 철학은 내 친구이후, 오랜만에 내 삶에 철학자의 삶이 맞닿는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한국의 장례문화가 가정과 친족 간에서 이루어지다가 병원과 장례식장이라는 곳으로 넘어 가면서 죽음을 꺼리고 멀리하는 문화로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머리를 뭔가로 맞는 듯이 혁명이 오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함께 데미안이나 이방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앎이라는 즐거움을 계속해서 누렸었다.

생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다시 아침의 피아노를 통해 내 머리가 아닌 가슴이 댕댕 종 치듯이 깨달음이 울려댄다. 마치 봄에 새싹 돋아나듯이 간질간질하면서도 묵직하니 저릿한 깨달음을 준다.

 

“ 선생님은 지금 비상사태에요, 그렇게 슬프거나 울적할 시간이 없어요. 라고 그는 나를 탓한다. 그가 옳다. 나는 존재의 바닥에 도착했다. 단독자가 되었다. 본질적 타자성의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나의 삶을 혼자서 다 껴안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무거웠던가(70쪽).”

12살 쌍둥이 키우면서 수원에 콕 처박혀 있는 내가 뭐가 그렇게 힘들게 있겠냐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삶은 각자의 이유로 그냥 오롯이 혼자 힘들고 무겁다. 누구나 단독자다. 본질적으로 타자성의 존재가 되어서 혼자 자기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철학자의 깨달음이 문득 내 삶에 의미를 던져 주고 나의 하루의 무게를 지탱하게 해 준다. 그래요, . 누구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걷고 있는 거지요.

 

“운명의 한 해가 간다. 해는 가도 운명은 남는다. 나도 남는다. 나와 운명 사이에서 해야 할 일들도 남는다. / 조용한 날들을 지키기. /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159쪽).”

, 안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면서 속 끓는 날들을 보냅니다. 너무 우아하지 못하고 우악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내 삶을 우아하게 만들어 줄 비법이 이거였네요. 사랑과 아름다움에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단 한 마디라도……. 아니면 속으로라도 사랑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 볼게요. 그렇게 멋있게 내 삶을 살아가 볼게요.

 

“힘이 없다. 많이 힘들다. 그러나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동안 잊었던 나의 주제를 기억한다.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268쪽).”

구멍 숭숭 뚫린 쓰라린 삶에 철학을 덧대 살짝 살짝 기워보자. 겉보기엔 누더기 같아도 모진 풍파에 내 한 몸 따뜻하게 지켜줄 것이니까. 이왕이면 솜씨 좀 더 좋게 해서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아예 퀼트 바느질로 만들면 어떨까. 그땐 정말 멋진 작품이 되어버린 인생이 하나 나타날는지도. 사랑의 마을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