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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fake news)' 시대의 지성운동 

 


최근 몇년간 한국사회는 '가짜뉴스(fake news)'의 대대적인 등장을 보고 있다. 물론 이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현상을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거와는 다른 양상임에는 틀림없다. 언론계에서는 가짜뉴스 논의에서 '오보'(misinformation) '왜곡'(disinformation)을 구별해야 한다며 조심스런 반응이다. 결과적으로는 틀린 내용이더라도 전자는 의도성이 없는 오류나 미숙함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의식적인 정보의 왜곡과 조작이 문제가 되는 경우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짜뉴스를 처벌하거나 규제하자는 시도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활동'을 위축시킬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고민은 한국사회 가짜뉴스의 생산, 유통, 확산에 가장 중요한 축으로 개신교가 떠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다가 개신교는 이런 사회적 퇴행의 주도적 집단이 되었을까? 단지 특정한 사회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이들이 쉽사리 기생할 수 있는 숙주로 선택되어 활용된 것일까, 아니면 개신교 신앙 자체가 진위와 사실관계를 엄정히 판별하는데에 결함이나 약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것이 가짜뉴스가 아니고 개신교인이 나아갈 진실된 방향을 제시한 것이므로 시대를 거슬러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마땅한 것이었을까

 

개신교 내부에서 지성운동을 한다는 이들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철학이 과연 우리는 무엇이 진실 혹은 진리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캐묻고, 때로는 무엇이 진리인가를 엄격하게 논하는 반면, 신앙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우회해서 진리주장(truth claim)으로 비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기독교 지성운동이란 한갓 말장난에 불과하다. 물론 이 논의는 진공중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적 탐구에 머물지 않는다. 당장 우리 주변의 개신교인들과 교회들에서 신앙이 작동되는 방식, 이를 가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말과 행동들이 어떻게 '지성과 신앙'의 조화 혹은 적어도 비판적 긴장을 유지하게 하거나 방해하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설 대안 논의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필연적으로 '교회 대 세상'의 구도로 '진리 대 비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 성찰' '타자를 향한 환대'의 중요성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성운동은 언제나 자기비판을 수반하는 행위이다. '자기충족성' '타자의 배제'로 귀결되는 지성운동이란 그 자체로 격렬한 자기모순이다. 오늘의 개신교는 이런 자기모순을 자기존재증명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허나, 모든 빛나는 것이 금은 아니듯, 모든 자유롭게 만드(든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탈진리(post-truth)' 혹은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 따위의 그럴듯해 보이는 아무말 잔치가 국제적으로 성행한다. 개신교 신앙과 지성운동의 조화와 협력을 도모하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자세를 낮추고, 귀를 열고, 시야를 멀리 둘 일이다

 

한국 개신교 내부에 지식생태계를 단단히 터잡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대학이나 신학교가 이런 작업에 핵심 역할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나, 마크 놀이 일찍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도 지적했듯,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기독교 연구기관이 없다. 미국에도 그러하고, 한국에도 그러하다. 냉정하게 자기평가를 해야한다.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냉정히 말해 그 수준에 우리는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그런 작업을 마땅히 수행하고 있어야 할 제도권 내의 교육, 연구 기관들이 이를 방기하고 있는 현실로 인해 이런 시도는 제도밖 재야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쪽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개인기나 소규모집단의 제한된 역량 아래 이런 과제는 부분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시도될 뿐이다. 나는 청어람ARMC 13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IVF복음주의운동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공부공동체들이 풀뿌리를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개신교 지성운동의 체질개선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좋아지겠지 생각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다. 목적의식적으로 땅을 개간하고, 비료를 뿌리고, 씨앗을 심는, 오늘의 성실한 노동이 바라보는 미래이다. 역사의 격변과 진퇴에 어떻게 영향받을지 모르나, 기독지성운동은 핵심적 물음을 놓치지 않고 미련하게 전진하는 각오가 필요한 시절이다. 가짜뉴스 시대에 지성운동을 깊게 깊게 고민하자


양희송 / 청어람ARMC 대표, 복연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