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서는 성경 통독에 도전하는 평신도들에게 있어 ‘읽기 쉬운’ 본문으로 분류되곤 한다. 아마도 이는 어려운 비유나 상징들 대신 직설적이고 간결한, 논리적인 언어들이 서신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서신서를 제대로 ‘읽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서신서 읽기에 있어 텍스트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것이 서신서를 둘러싼 컨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서신서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결여된 채 서신서에 텍스트로만 접근할 경우 서신서의 텍스트가 가진 풍부한 읽기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평면적이고 파편적인 해석만이 남는다. 빌립보서 4장 13장이나 로마서 13장 1절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컨텍스트 없는 텍스트 읽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제국과 천국』은 바로 이 서신서의 역사적, 사회적 컨텍스트에 주목한다. 저자 브라이언 왈쉬는 제국 로마가 이루어낸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거짓 평화 속에 숨겨진 폭력과 어두움을 조명하면서, 골로새서가 가진 ‘반역’의 함의를 이끌어낸다. 즉, 골로새서가 가진 복음의 원리들이 황제라는 권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국의 논리를 전복하는 반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지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왈쉬는 고대 로마라는 제국의 그림자 아래 살았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분석을 현재로까지 끌고 온다. 왈쉬는 현대 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단일화된 경제구조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한다. 따라서 왈쉬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 그리고 바울이 골로새서를 통해 권면했듯 제국의 폭력과 부정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주석서다. 그러나 일반적인 주석과는 다르다. 성경의 본문과 해설을 쭉 나열하는 대신 골로새서 저술 당시의 삶을 짤막한 이야기들로 복원해 내고, 로마와 현대 제국의 이야기들, 그리고 본문의 텍스트를 엮어 골로새서의 메시지를 보다 뚜렷한 언어로 구현해 낸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형식의 글로 책의 내용들을 한 번씩 정리해준다. 지루하지 않고, 어렵지 않다. 신학이나 성경 본문에 대한 선이해 없이도 읽을 만한 책이다.
텍스트를 컨텍스트를 바탕으로 읽어내는 것은, 텍스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다. 텍스트, 특히 성경의 텍스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이 성경을 우리의 삶에 정확하게 적용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한다면, 성경을 읽는 독자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성경의 텍스트에 집중하는 대신 성경의 뒤에 있는 컨텍스트에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과 천국』은 텍스트 중심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을 뛰어넘어 우리의 성경읽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성을 뒤바꿀 만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