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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진짜 희망이 있는가? - 오연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 2014) 서평


이주일(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연구원, 고려신학대학원 M.Div. 과정)


내 취미 중 하나는 영화 관람이다. 영화는 고단한 현실에 지친 나를 그야말로 ‘새로운 현실’, ‘스펙타클한 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껄껄 웃기도 하고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내가 가고 싶었던 그 세계와 꽤나 근접하다.

하지만 예술의 장르 중 하나인 영화는 ‘구원의 상상력’을 제공할 뿐 ‘구원의 능력’을 주진 못한다. 영화의 세계가 곧 현실의 세계인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소수의 예외가 있다면, ‘실화’라는 단어가 붙은 영화일 것이다. 비록 스펙터클한 영화들이 지니고 있는 화려함은 없다고 해도 스토리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무게는 견뎌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은 ‘총체적 절망’이라는 말로 설명가능해 보인다. 특히, 어른들의 기득권에 갈수록 편입되기 어려워지는 20~30대, 그리고 이 세대에 속한 내가 체험하는 현실은 정말 가혹하다. 오래전 ‘88만원 세대’로 통칭된 경제적 난국,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끊임없는 재앙, 그리고 이 재앙을 초래한 정치(정부)의 실종, 이것을 견제하며 개혁하고 회복시켜야 할 진보 세력의 붕괴...... 지금의 한국사회는 자유도 평등도 평화도 안전도 부재한 말 그대로의 총체적 절망사회다.


최근 결정적인 역사적 시점이 여러번 지났음에도 이런 절망사회를 희망사회로 변혁시킬만한 근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촛불집회를 하고, 세월호 투쟁을 해도, 결국 절망사회의 현실은 엄청난 권력의 힘을 통해 다시 한번 희망을 억누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있는가?


인터넷 미디어 <오마이뉴스>의 대표기자인 오연호씨가 작년 9월에 발간한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는가>는 사회민주주의를 현실 속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다고 평가받는 북유럽 나라 중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에 대한 취재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 붕괴에 직면해 있는 그리스 사태의 원인이 ‘복지 과잉’이라며 선진국들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우리나라의 복지성장을 견제하려는 <조선일보>류의 주장과 달리, 덴마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로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의 양날개를 붙잡는데 성공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창작’이 아니라 ‘실화’라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탐독하는 시간 내내 꿈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이 책을 덮은 직후에 덴마크 이야기가 마치 하나의 아득한 꿈처럼, 상상력으로 가득채워진 영화처럼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에서 자유, 평등, 성장, 분배, 평화, 안정 등이 실현되는 그 기저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는 그 사실이 오늘날 한국사회와는 너무도 크게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덴마크의 신뢰는 한순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작고 인구도 더적으며 자원도 더 부족하고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날개 한 번 펴기 힘든 중립국 덴마크에는 지금까지 체험적으로 쌓아온 크고 작은 협력과 성공의 결과들이 그 기저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정권교체보다 사회교체가 더 시급하다” 최근 어디선가 읽었던 이 말이 가슴 속 깊이 꽂히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