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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리뷰] 2011 07 05 Peter Char 2강

category 복연 리뷰 2014. 11. 19. 16:39

Peter Char 2.

1985년쯤 미국대학에 포스트모던이 처음 나타났다.

한참 지난 다음에야 대학 바깥에서야 포스트모던이 이야기 되고, 2000년대 지나서야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포스트모던을 책을 통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던을 어떻게 정의하냐는 것이 정말 어렵다.

다른 학문, 분야에 따라 포스트모던을 바라보고 이해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사회과학, 예술, 각각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오래된 인디안 이야기가 있다.

장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포스트 모던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눈먼 장인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활에 미친 포스트 모던을 이야기 할 때 각기 다른 관점(angle)에서 이야기하게 될 것 이다.

 

1.     포스트 모던이 가져온 지적인 도전과 변화들

대학사회가 오랫동안 가지고 왔던 통념중에 하나는 진리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의 영향을 진리는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합리성,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진리들을 더 발견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대 대학 개념에서 과학자들이 최고의 대접을 받았었다

포스트 모던 세대에서는 진리에 대한 생각 도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이라는 것이 절대화 될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조차 객관적이다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과학철학자중에 토마스 쿤 패러다임 전환

1962년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썼고, 당시에 시카고 대학의 신입생들은 그 책을 일었어야만 했다. 논쟁중의 하나가 모든 과학자들은 다른 연구자들처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전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 전제들 사고들이 무엇이 옳은것인지 그른것인지,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무엇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것인지 결정짓는 사고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연과학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그 연구기금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연구기금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proposal 써야할지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연구에 대한 proposal 자체가 연구보다 돈을 더 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게된다.

토마스 쿤이 말하기를 이렇게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 연구를 객관적인 연구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무엇이 성공적인 연구가 될것이냐 아니냐는 것 자체가 객관적인 탐구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런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포스트모던에서 객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직하게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각자가 주관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박사학위를 딴 노스 웨스턴에서는 저널리즘에 대한 학교가 있는데..

저널리즘을 위한 홍보 이런 것들을 슬로건으로 말하고 있었다.

1999년 이전에 사람들이 저널리즘(보도)에 가지고 있었던 사실은 객관적인 것 그대로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1999년 이후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저널리즘, 이라는 것이 등장한 이후에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시카고에서 유명한 시카고 트리뷴이란 신문에서는 사실 보도가 아닌 것이 전면에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어떤 사건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객관적이기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누군가를 위한 저널리즘이라 일컸는다.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애쓰지 말고 주관성을 가지고 누군가를 도와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텍스트 본문을 확보할수 있을까?

독자의 몫, 해석자의 주관성이라는 것이 많이 이야기 되어지고 있다.

의미라는 것이 책 안에 있다고 여겨졌지만, 독자들이 발견해야 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석학적인 변화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엄청난 변화이고 많은 생각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위기인 동시에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통해 그것을 할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지식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느냐?

 근대시대를 사는 동안 지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선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시카고 대학의 모토는 지식을 더 앎으로서 인류가 더 자라가고 부유해 지자.’

대학은 모든 종류의 지식들을 탐구하도록 격려해왔다.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것들이 바뀌어 갔다.

지식(아는 것)이 힘이다라기 보다 오히려 힘이 그 지식을 결정하고 만들지 않느냐는 거다.

프랑스 철학자의 푸코는 이런 생각을 학문 세계에 많이 이야기 해왔다.

어떤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것이고, 알지 않아도 될것이고, 어떤것이 정상이고 정상이 아닌지,

바로 그것을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형성되어 오지 않았나라는 것이다.

교육을 지식의 산물로 보았던 것을 푸코는 권력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푸코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의심의 해석학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교수들이 가르치면 저 사람이 왜 저것을 가르칠까 라는 해석학을 하기 시작한다.

왜 저사람이 저 이야기를 하고, 저렇게 이야기 했을 때 누가 이득을 가져가냐는 고민을 하게 된다. 점점 더 대학안의 강의실 풍경이 다른 생각을 가진 그룹들이 서로의 생각들을 보여주면 로 충돌하는 모습들로 바뀌어 간다.

한 예를 들면 콜로키움이라는 세미나 수업이 박사과정 가운데 있었는데

60대 불교를 전공한 교수(백인)이 있었다. 그분의 핵심메시지는 결국 모든종교는 같고, 하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한 다른 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동료중의 한 여학생이 열받아서 책상을 치며 일어나서 이야기 했다.

저는 체로키 인디언인데, 당신 백인들이 우리의 땅과 모든 것을 가져갔습니다. 지금은 모든 종교가 같다는 말을 통해서 심지어는 내가 믿는 종교까지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교수님은 30-40년동안 그와 같은 도전은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토착 인디언들이라는 문화가 저기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학생이 가져온 수준 높은 해석학의 질문들은 어떻게 대답할수 없었다.

그날 본 것은 근대와 탈근대, 포스트 모던과 모던이 충돌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해에 교수는 은퇴했다.

아마 은퇴하기로 결심해왔던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이 생각해왔던 종교에 대한 생각들이 근대성에 기반을 둔 것이고 더 이상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거대담론들의 위협

지금 거대담론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심리학, 프로이드 같은 경우 비엔나를 떠나본적이 없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프로이드의 이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담론은 이야기다.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그 교수님의 이야기가 거대담론인 거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전에 주장되었던 진리라는 것은 거대담론에 불가하다고 이야기 한다.

보편화된 거대담론이라는 것은 한 지역의 이야기일수 있는데 결국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보편화 시켰기 때문에 그것을 거대담론으로 등장하고 있는거 아니냐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 대학 세계에 점점 더 알려지게 되면서 기독교가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로컬의 이야기 였을 거대담론이 결국 유럽사람들의 힘을 통해 (식민지) 전세계의 거대담론거 된 것이 아니냐 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캠퍼스에 사역하는 사람들이 해야 했던 중요한 반응들은 기독교라는 것이 거대담론이 맞다.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파되고 알려진 것은 유럽을 기반으로 힘에 의해서 전파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작업들 중 하나가

왜 이렇게 많은 (포스트모던)학자들과 젊은이들이 기독교에게 공격적인가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

포스트 모던의 사람들이 거대담론에 저항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1.     작음,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거대담론이 누군가에 의해, 힘에 의해서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필립 젠킨스의 신의 미래그 책이야 말로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다 라는 공격에 대한 좋은 답변이다. 그 책에서 기독교가 이제는 북반구 사람들의 종교가 아니라 남반구 사람들의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은 백인들의 통치기간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떠나간 한참 뒤에 그들이 (기독교가) 성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모던시대의 사람들이야 말로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다 라고 말한다면 그말에는 많은 흑인 크리스챤들이 아무 생각없이 백인들의 종교를 따라가는 마냥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서양만의 기독교가 아니라 세계의 기독교가 된 이상 기독교에 대한 거대담론에 대한 공격은 미국안에서 점차 감소하고 있다.

2.     거대담론들이 지역 기반에서 지지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힘을 가졌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 자신만을 위한 사역에 몰입한다면 이러한 비판에 대해 별로 할말이 없다.

지난 15년동안 미국에서 했던 중요한 작업들 중에 하나가 사회 정의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참여하면서 포스트 모던의 사람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약자들과 버려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것을 참여를 통해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두번째 문화적인 도전들이라고 볼수 있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것은 다문화의 형태로 온다. 미국 대학에서 볼수 있었던 것은 포스트모던과 다문화라는 것이 쌍둥이처럼 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하나의 가치를 거부하고 작은 지역기반을 한 것들을 부추기고 하는 것을 살펴보기 원하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20-30년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그룹들이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여성, 게이, 레즈비언 작은 것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프로그램들 시작하게 되었고 센터들을 갖게 되었다.

물론 센터들을 위해서는 좋은 일일수도 있겠지만 대학사회가 그룹들로 하나 하나 쪼개지는 어려움도 있다. 마치 대학사회 안에 지적인 부족주의 시대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학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지적으로 게토화 된 것을 의도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을 경험한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둔 정치라고 볼수 있다.

 다른 면이겠지만 포스트모던이 가진 모습중 하나는 소비 지상적인 모습이다.

근대라는 것이 산업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결과물로 만들었다면 포스트 모던은 소비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마트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안의 학생들에게도 들어와 있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을 소비자, 구매자라고 생각한다.

교수는 판매하는 상인이 된다.

미국의 인터넷 프로그램중 하나는 학생들이 교수들의 점수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학생들이 수강신청하기 전에 교수들의 평점과 평을 받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아마 미국에서는 20-30년 전에 사람들은 생각할수 없었던 다른 배움에 대한 태도이다.

다니던 신학교 자체도 학교 이름을 어떻게 알릴것인가? 브랜드화 할것인가 고민이 있다.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무엇인가를 사고파는 것만은 아니다.

대학에 와서 어떤 선교단체에 가입할것인지 어떤 교회에 다닐것인지도 같은 논리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어떤 지부들의 경우에 학생들에게 뭔가 더 매력적인,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그들이 정말 들어야 하는 선지자적 목소리를 낼수 없었다.

 

정체성의 도전들

우리가 다문화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소비를 매개로 하는 문화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다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장소에 가게 되면, 거기에 맞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도 많아지고 있고,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질문에 따라 신학교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지적인 도전들, 문화적인 도전들을 들으면서 미국의 상황들을 기반으로 들었는데,

한국 캠퍼스에서 비슷한 점, 다른 점에 대해서 말해달라

 

Q.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감이 힘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반기독교 정서가 이슈가 되고,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기독교인들 중에는 여전히 기독교가 더 커져서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거부감을 갖게 되는데, 우리한테 짐이 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데

한국의 반기독교적인 문화도 포스트모던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거부와 비슷한 부분이라고 볼수 있는가?

A.           포스트모던의 의심의 해석학은 어떻게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게 굉장히 집중한다. 근대성이 무엇이 진리이냐가 중요한 것이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누가 힘을 갖고 있느야 어디에 힘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미국은 지금 후기 기독교다 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무슨 후기 기독교냐 라고 말하는데.. 제 생각에는 미국이 후기 기독교 시대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포스트 모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새롭게 이야기 할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힘들과 그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없이 순수하게 복음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의 해석학, 권력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중요하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질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많이 있지 않나? 그렇게 본다면 한국사회야 말로 기독교는 바로 미국의 현연과 분리될수 없는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기독교 자체가 문제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왜 지금이야말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신학적으로 반성하면서 이것을 넘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던 이유이다.

IVP 출판 20%가 한국에서 나온책이고 나머지는 영미번역책이다라고 말했다. 50:50 이었으면 좋겠고, 여러분이 그런 저자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학사회에서 기독교가 서구의 무엇인가를 대변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해되어져 있다면 기독교 복음, 진리를 전하는 것이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Q. 지금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수강의 평가제나 학생 상대평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제가 한국상황을 잘 몰라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미국 상황을 말하겠다.

학기가 끝나면 강의평가를 하게 된다. 거기에 무기명으로 쓰지만 선생님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적게 된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받을 때 큰 도움이 되는데.. 어떤 부분들이 자라가고 필요한 부분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만든 예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는 사이트다.

그런 평가는 교수, 학생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960-70년도 미국 IVF 전도프로그램 담당자였던, 폴리틀에서 나온 것입니다.

트리니티, 전도에 대해서 이분이 강의하셨었다.

오늘날의 있는 10가지 질문은 릭 리차드슨의 책에서 나온 것이다. 릭 리처드슨은 폴리틀이 미국IVF에서 했던 질문들을 하고 있다.

여기있는 질문들은 수백개의 대학을 돌면서 들은 구도자들의 질문이다.

생각해볼 3가지 질문이 어떻게 다른지.. 60년대와 2000년대의 질문들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라.

1970년도 대학과 지금 대학과의 변화들.

특별히 2000년대의 질문들을 보면서 IVF가 이 시대에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리를 전할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Q. 이 질문들 자체가 미국의 질문들인데.. 이 질문들이 한국의 정황가운데도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생각해보라.

 

 

Q. 구조에 대한 질문, 교회는 우리 문화와 사회의 어떤 계층 구조를 정당화 하는가? 이해가 안된다.

A. 미국에서는 이 질문이 여자학생에게서 많이 온다. 여자 교수들이 많고, 여자 총장, 학장들도 많다. Ph.D 이런것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생겼는데.. 교회만 가면 아직도 남자들 세상이다.

왜 교회는 여자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가?

목회자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면서 너무

 

시니어 간사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포스트모던적인 질문을 했다. “왜 여자들은 안 계십니까?”

 

 닉 리차더슨 2000년대 학생들이 60년대 질문들을 버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 질문들을 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앞의 질문이 아니라 2000년대 질문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60년대 질문으로 간다는 것이다.

2000년대 질문은 조금더 사회학적인 질문이고, 60년대 질문은 교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들 사이에서 차이를 볼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60년대에 사람들이 적어도 기독교의 내용들을 알고 있을것이다. 거기에서 시작되는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교회도 안가고 기독교 내용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60년대 교리적인 질문 2000년 경험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포스트모던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60년대에 해석해야 할 텍스트가 성경이라는 책이었다면, 2000년도에는 해석할 텍스트가 사람들, 공동체가 되었다. 신학적이었다면 사회학적으로 옮겨 갔다.

질문의 톤, 차이를 볼수 있는가?

 

포스트모던의 해석학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반감, 칼들고 있는, 지적인 궁금함이 아니라, 마음이 정한 상태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2000년대 닉 리처드슨의 책을 통서 미국 IVF안에 많은 논의가 촉발되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전도가 60년대 10가지에 기초한 상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60년대 질문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질문들을 해결하고 난 다음 60년대 질문들로 갈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이후에 미국 IVF안에서 어떤 작업들을 하게 되었는지 나누겠다.

 

 우리가 했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 공동체에 속하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을 기대했다.

먼저 믿고 우리의 공동체의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2000년대 질문들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경험하면서 우리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공동체에 와서 함께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이전에는 소속되기 위해서 믿어야 했다면, 지금은 믿기 위해서 어딘가를 따르고 속하는 것으로 이 순서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복음 전도가 어려워 짐을 나타낸다.

이제는 입으로만 기독교의 진리를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가 삶을 살아내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해야 하는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정체성의 정치라는 이슈 때문에 미국 대학이 그룹들로 쪼개져 있다.

아프리카 학생들은 누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라틴 학생들은 누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아시아 학생들은 모여서 밥만 먹고, 서로 어울리지 않고, 각각 자기의 그룹, 게토에 갖혀있는 것이 지금의 대학생활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속에서 학생과 간사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다인종, 다문화 공동체를 이뤄낸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것인가

요한복은 17장에서 예수님이 체포되시기전에 무엇이라 기도하셨나

17장 전반부, 11명의 기도였지만, 이후에 시작될 교회를 위한 기도셨다.

예수님이 많은 것을 위해 기도하실 수 있었겠지만 한가지를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처럼 내가 너희를 보내서 세상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것이다.

이것을 결정했던 결심은 쪼개지고 적대적인 관계속에 있는 대학사회 안에서 진정으로 서로 화해하고 하나가 된 제자들이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환경이 화해의 사역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된것이었다. 다른 상황에서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경험들을 할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한국 IVF 에 갖고 있는 질문은, 상황은 미국의 상황과 다를 것이다.

미국처럼 다문화라는 것이 긴장과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사회에서 가장 큰 갈등을 만들어내는 영역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강력하게 증거할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회가 될것이다.

IVF 모임에 처음 오는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은 예배에 처음 왔을 때, 백인, 흑인, 아시아, 라틴 학생들이 서로 적이나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로 여기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들은 왜 바깥사람들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 미국 IVF 다민종, 다문화 사역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한 사역에도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대학의 많은 흑인, 라틴 학생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계속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 지금도 그 일이 계속 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인종주의, 인종차별은 아직까지 미국사회에 펼쳐져 있고, 대학사회에도 남아 있다.

미국 백인간사들, 학생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때문이다.

사도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누군가 아프다면 우리 모두 아픈것 처럼..

학교에서 인종차별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 간사들이 같이 아파하며 학교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통해서 이 문제를 같이 풀어간다.

우리 대학에는 400-500명의 큰 학생들이 있다.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하고 있는 챕터이고,

그런데 그해 백인 한 학생이 욕실, 도서관에 흑인을 비하하는 그래비티를 해놨다.

그것에 열받은 흑인학생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총장실 앞에서 항의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많은 방송사들이 취재인력들을 보냈다.

그 대학을 담당하던 간사님이 점점 더 큰 갈등으로 커져서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00명의 IVF 학생들이 기도라고 쓰여진 까만한 띠를 두르고 시위 현장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개입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총장실에서 보니까, 그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총장님과 담당 간사님이 독대를 하게 되고, 이런 질문들이 나오게 되었다.

당신들 기도모임에 누가 참여합니까?”

거기 총장, 담당간사님이 3분이셨는데, 백인, 중국계, 흑인들이었다.

우리 모임에는 백인, 흑인, 아시아인들도 많이 있다.”

총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도 그모임에 참석하고 싶다. 대학안에 모임들이 다 인종별로 조각난 줄 알았는데 나도 가고 싶다.”

파트타임 하던 간사님이 학교에서 다인종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채용되게 되었다.

심지어는 나중에는 총장님이 미국IVF에게 우리가 어떻게 함께 더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지 배워야 겠는지, 조화를 이루면서도 다른 것을 배우며 살수 있는지 배워야 겠다.

이사회 미팅중에 대학의 행정담당자와 대화할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미국의 교육가들이 깨닫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다문화, 다인종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게 실패하고 있구나를 그들이 경험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17장 말씀처럼 말씀대로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갈 때 포스트 모던에서 강력한 증거의 기회를 갖게 된다.

 친구 같은 간사님들, 리더들에게 도전하고 싶다.

가장 두려워 하고 건드리기 싫어하는 영역들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나.

 

2000년대 10가지 질문들은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미국 IVF는 역사상 어느해보다 IVF를 통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경험했다.

지난한해 2600명 이상의 IVF를 통해 예수님께 돌아왔다는 숫자를 보게 되는데, 이전보다 4-500명이 더 늘어난 많은 숫자다. 어려운 시대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했을 때 일들을 하시지 않는가라고 말할수 있다.

 

Q. 예전에 명제 자체가 복음전도가, 최근에는 공동체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미국 사회 자체가 다인종 사회이기 때문에.. 복음전도라고 이해했다.

한국 사회 자체는 아직 다인종 사회로 변화하고 있지만, 대학 캠퍼스안에는 다인종 공동체를 형성할 만한 문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공동체라는 틀 자체가 복음전도에 비해서 우선시 되는 도전이 된다 것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 자체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예전에는 지성사회 복음화라는 도전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캠퍼스 자체가 주어지는 도전이 모호하다고 생각이 든다. 이부분에 대해서 해줄수 있는 말이 있는가?

A.    한국 온지 1주일, 택시를 타면 질문을 한다. 두세명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는 됐는데, 차별이 심하다.( 사회적 차별) 택시를 열심히 해도 좋은 교육을 시키기 어렵다. 학교에서도 이런 차별이 있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보이는 차별이 보이지 않은 사회적, 경제적 계급적 차별보다 극복하기 더 쉬운 것이 아닌가. 그것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누군인지를 어떤 교육, 직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을 가진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우리라면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안에서 우리가 다른 목소리, 문화적인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을까?

2세 목회를 할 때, 2-3세로 모였는데.. 미국에 일류대학을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자기 자동차에 자기가 나온 학교를 붙였다. 어떤 초신자가 그런말을 했다.

이교회는 오기 힘든 교회입니다. 이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을 반기는 것이 환영위원이 아니라 바깥의 차이다. 비싼 차는 아니지만, 그 뒤에 스티터를 보니까 다 일류대학이었더라.

아시아 문화는 어디서 졸업을 했느냐가 중요한데, 처음 온 초신자는 자기는 명문대학에 안갔다. 그래서 오기가 부담이 되었다.

이민사회에서 어디 대학교에 나왔냐가 중요한데, 교회 밖에 이민사회에서는 우리가 어느 대학에 나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왕국다운 공동체가 되려면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 뒤에 스티커를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