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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박이대승, 오월의봄, 2017

촛불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그 과정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도 분출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약자의 고통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서툴다. 촛불 이후에 출간된 『개념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에서 저자 박이대승은 그 원인이 개념언어의 부재정치언어의 과잉’(7)에 있다고 진단한다.

말과 언어의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어, 공동체 내에서 그것을 통해 구성원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념언어. 개념언어는 사회의 표준을 구성하며, 그를 바탕으로 성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다. 반면, ‘정치언어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언어다. 사람들은 정치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제를 선점하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해간다.

정치에는 개념언어와 정치언어가 모두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는 합의된 개념언어는 거의 부재한 반면, 정치언어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정당의 정강에 평등한 시민사회 실현이라는 목표가 명시되어있다고 해도 구성원 간에 평등이나 시민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합의가 없으므로, 이 정강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정치언어는 청년이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이후 청년의 어려운 삶과 높은 실업률은 전사회적 과제로 부상했다. 하지만 실제 청년이 누구이며, 이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개념적 진단은 나오지 않고, 수많은 청년정책만 나오고 있다. 저자는 사실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청년이라는 언어가 상징하는 연령대 인구의 불행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주거 빈곤층’,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확한 개념언어로 문제를 직시하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과 언론은 ‘88만원 세대’, ‘갑을관계’ ‘고시원살이등 감정적 효과는 크되,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건드리지는 않는 정치언어만 되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사회에 시민성과 그와 관련된 개념의 재구성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시민’, ‘권리’, ‘평등과 같은 개념은 서구에서 수입된 것으로, 그 개념들의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 사회에 그것들의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내재화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도 시혜의 대상이 아닌 천부인권을 가진 동등한 동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민주주의 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작업이다. ‘개념을 제대로 갖추면 우리의 관점과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 촛불과 정권 교체 이후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인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박은영 / 복연 연구원